[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섭씨 28도, 초여름에 가까웠던 14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의 열기가 더해져 찜통에 들어앉은 듯 했다. 흡사 K팝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기의 주인공은 K밴드 대표주자로 우뚝 선 밴드 데이식스다.

2015년에 데뷔, 벌써 9년차에 접어든 중견 밴드다. 데뷔 초만 해도 원더걸스, 갓세븐, 트와이스 등, 유수의 K팝 그룹을 배출한 JYP엔터테인먼트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급조한 밴드일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1년 선배인 갓세븐과 트와이스의 기세에 밀려 실제로 초반에는 크게 빛을 보지못했다.

하지만 2017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 ‘예뻤어’가 역주행하며 서서히 자신들만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2019년 발매한 미니5집 ‘더 북 오브 어스 : 그래비티’ 수록곡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은 팬데믹을 거친 뒤에도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청춘송가’로 거듭났다.

부침도 적지 않았다. 6인조로 데뷔했지만 2명의 멤버가 탈퇴했다. 팬데믹 기간인 2020년, 미니 6집 ‘더 북 오브 어스 : 더 디먼’ 활동을 앞두고 멤버들이 심리적인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타이틀곡 ‘좀비’가 이미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한의 건아로 돌아온 멤버들은 심신을 단단하게 다졌다. 2021년 리더 성진이 가장 먼저 조교로 군복무에 임했다. 영케이는 K팝 아이돌 최초 카투사로, 막내 도운은 육군 군악대로, 그리고 원필은 해군으로 복무했다. 멤버들의 빈자리는 역주행곡들이 대신했다.

이날 공연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팬들에게 제대 신고식을 치른 뒤 팬들과 두번째 만남이다. 공연이 열린 잠실실내체육관은 5년 전 처음으로 밟았던 무대다. 이번에는 360도 원형 회전 무대로 추억을 환기시키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군 복무 중에도 마이크와 악기를 손에 놓지 않았던 9년차 밴드답게 데이식스는 노련한 무대 매너로 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시작부터 떼창의 연속이었다. 4명의 멤버 모두 보컬이 가능한 이들은 흔들림없는 고음과 청량한 목소리로 더위를 한방에 날렸다.

미니 8집 ‘포에버’ 타이틀곡 ‘웰컴 투 더 쇼’로 시작, ‘러브 퍼레이드’,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맨 인 어 무비’, ‘예뻤어’ 등 히트곡의 연속이었다. 360도 회전무대에 선 이들은 쉬지 않고 10여 곡을 달리며 카랑카랑한 목청을 뽐냈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 팬덤 ‘마이데이’와 호흡은 두말할 것 없었다. 데이식스가 선창하면 ‘마이데이’가 화음을 넣었고 데이식스가 반주를 시작하면 ‘마이데이’가 떼창으로 화답했다.

원필은 ‘예뻤어’를 부르는 ‘마이데이’를 바라보며 “어떻게 이렇게 예쁠까. 원래 이런가”라며 놀라움을 표했고 도운은 “마이데이는 타고났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80분동안 27곡을 토해낸 데이식스는 공연 내내 감격에 벅차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신보 수록곡 ‘해피’를 부르며 눈물을 쏟은 원필은 “너무 예쁘고 감동적이다. 이 사람들(마이데이) 때문”이라며 “‘해피’는 진짜 벅차서 슬픈 느낌의 곡이다. 사는 게 쉽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잘 살아가고 있다. 이 구간에서 다 같이 불렀던 분들은 진짜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팬들에게 위로를 주고 우리도 위로 받기 위해 이런 가사를 쓰고 이런 무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막내 도운도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오늘 뭔가 감정이 이상하다. 벅찬 기쁨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 뭔지 아나.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또 느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맏형이자 리더 성진은 “우리는 뿌릴 뿐이고 여러분이 다 채워주신다. 행복만 할 순 없지만, 사이사이 행복한 시간을 끼워넣을 수 있지 않나. 행복한 기억을 갖고 천천히 걷다보면 언젠가 그 행복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성진의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데이식스의 시작은 미약했다. 트와이스, 갓세븐과 함께 싹을 뿌렸지만 더디게 핀 꽃봉오리, 그러나 9년차에 활짝 만개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는 ‘해피’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약 사흘에 걸쳐 진행된 공연은 3만 4000여 관객이 관람했다. 마지막 공연은 소속사 식구인 2PM 준케이, 트와이스 정연, 지효, 다현,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건일, 오드, 넥스지 등도 함께 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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