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유다연 기자]1980~9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를 이끈 장국영(장궈룽·1956∼2003)이 사망 21주기를 맞았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몸을 던졌다. 사망 당시 47세였다. 만우절에 전해진 비보에 전세계 팬들은 “믿을 수 없다” “만우절 거짓말이다”는 반응을 보이며 충격에 휩싸였다.

1956년 홍콩 유명재단사 집안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장국영은 부친의 영향으로 영국 리즈대학에서 섬유를 공부했다. 그러나 학업에는 별 뜻이 없었다.

1976년 만 21세의 나이에 홍콩 ATV 아시아 뮤직콘테스트에 2위로 입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2년 뒤 영화 ‘열화청춘’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알렸다.

가수와 연기활동을 병행한 장국영은 1980년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1986), ‘천녀유혼’(1987)과 더불어 앨범 ‘서머 로맨스’(Summer Romance)의 성공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6번 내한해 초콜릿 CF를 촬영하기도 했다. 당시 장국영의 인기는 지금의 방탄소년단 못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한 성격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89년 천안문 6.4항쟁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비난하고, 중국 최대 폭력조직 삼합회의 영화계 진출을 공개 반대했다가 언론과 척을 졌다.

그해에 장국영 팬과 동료배우 알란 탐 팬이 다투다 한쪽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자 장국영은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캐나다로 이주한 장국영은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1990)으로 복귀, ‘백발마녀전’(1993), ‘해피 투게더’(1997) 등에 출연했다. 특히 1993년 경극을 소재로 한 ‘패왕별희’에서 남성이지만 여성 배역을 연기하는 청데이 역을 통해 중성적인 매력을 완벽히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그 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25개 부문 수상, 9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는 기록을 세웠다. 덩달아 장국영 역시 영어명 ‘레슬리청’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왕가위 감독과 다시 한 번 손을 잡은 ‘해피투게더’는 칸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지만 고인은 사망 전 유서에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가 떠난지 21년, 여전히 세상은 장국영을 기억하고 있다. willow6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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