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기자]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은 새로운 기회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최근 종영한 KBS 2TV 일일드라마 ‘우아한 제국’에 출연했던 배우 이시강은 자신에게 닥친 기회를 잡았다. 드라마 속 장기윤 역을 맡았던 배우 김진우가 일신상의 이유로 총 105부 드라마 중 32회에 하차하면서 이시강이 빈자리를 채우게 됐다.

이시강은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KBS1‘으라차차 내 인생’(2022)을 마치고 연극까지 소화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아한 제국’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작가님과 SBS 드라마 ‘해피시스터즈’(2017)를 같이 한 인연이 있는데, 직접 전화를 주셔서 누군가 드라마에 긴급 투입되어야 한다는 상황을 전달받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굳이 해야하나’ 싶었죠. 대타로 들어가면 ‘잘해야 본전’이라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괜히 들어가서 욕먹는 거 아닌가 했어요. 고민하다가 하루 뒤에 하겠다고 결정했어요”

이시강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이었다. 첫 촬영을 앞둔 이시강은 3일동안 밤을 새 장기윤 캐릭터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이시강은 “교체 배우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초반엔 상황이 좋지 않아서 드라마를 책임감 있게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다”고 말했다.

“출연 결정 이후 잠을 설쳐가며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시놉시스를 보고, 대본을 외웠어요. 장기윤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PD님과 상의하면서 촬영을 준비했죠. 김진우 선배가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있었기에, 비교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같은 대본도 배우마다 표현 방식이 다르니까요. 저는 장기윤이 악하게 된 이유와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이시강이 연기한 장기윤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지만, 내면에는 심오한 상처와 야심을 간직한 인물이다. 더불어 무지막지한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시강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장기윤을 연기하며 “기절할 뻔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진짜 힘들었어요. 첫 촬영부터 악을 쓰는 장면이었어요.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인데 시간이 없어서 촬영 전에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혼자 소리를 미친 듯이 지르고 시작하기도 했어요. 감정 연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자제를 못 해 손도 부러지고 피멍도 들었죠. 마지막 장면에서는 독백이 엄청 길어요. 극한의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다 보니 숨이 차서 기절할 뻔했죠”

그의 노력은 안방극장에 고스란히 전달됐고, 결실을 맺었다. 이시강은 이번 작품을 통해 데뷔 15년 만에 KBS 연기대상에서 일일드라마 부문 남자 우수상을 받았다.

“상 받을 때 엄청나게 떨었어요. 일단 내려오자마자 PD님과 작가님에게 전화드렸어요. 긴장해서 이야기를 안 했던 게 바로 생각났습니다. 프롬프터에 빨리 소감을 말하라고 계속 나와서 말할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상을 받는 순간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2006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이시강은 어느덧 18년 차 배우가 됐다. 그는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준비 과정과 매력을 꼽았다.

“저는 선택을 받지 못할 때도 언제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도록 승마, 수영, 특공 무술 등을 배우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기 때문에 이 준비과정이 힘들지 않아요. 또 대사를 외우면서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를 명확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장 가면 항상 변수가 생기기 때문에 내가 준비한 패와 함께 준비한 배우들의 패를 맞추는 그런 작업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2024년 푸른 용의 해가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이시강에게는 어떤 목표와 마음가짐이 있을까. 그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지인들이 ‘네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는데, 저는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단역부터 시작해 주연도 하면서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뤘죠. 그저 내가 사랑하는 연기를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되어서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좋은 작품에 좋은 분들과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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