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BTS라는 그룹은 모른다. K팝은 무슨 시리얼 이름 같다.”

팬데믹 전인 2019년, ‘브릿팝 전설’로 꼽히는 밴드 오아시스의 맏형 노엘 갤러거는 K팝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이같이 답했다. 지천명을 넘어선 무심한 ‘영국 아재’ 록커다운 답변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4년 6개월이 지난 2023년, 노엘 갤러거는 한국 공연을 앞두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곧 보자, 아름다운 놈들아”, “너네 노래하는 거 보려고 공연추가”라는 어설픈 한국어 인사를 남겨 관객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노엘의 새 앨범 ‘카운슬 스카이즈’(Council Skies) 발매 기념 월드투어 일환으로 열린 이 공연은 한국 공연에 앞서 일본 공연도 진행했다. 하지만 노엘이 해당 국가 언어로 소셜미디어에 인사를 건넨 건 한국이 유일했다.

그만큼 한국 팬에 대한 노엘의 애정도 각별하다는 의미다.

한국 팬과 노엘이 돈독한 유대를 쌓게 된 건 2006년 오아시스의 첫 내한공연부터다. 이 공연은 국내 ‘떼창’ 문화의 시초로 불린다.

한국 팬들의 열성적인 모습에 감동한 노엘은 2009년 오아시스 해체 뒤에도 3년에 한 번씩 자신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공연을 펼쳤다. 팬데믹 직전인 2018년과 2019년에도 꾸준히 한국을 찾았다. 특히 2019년 잠실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공연 때는 고음 때문에 좀처럼 부르지 않던 오아시스 시절 히트곡 ‘리브 포에버’(live forever)를 즉석에서 불러 화제를 모았다.

평소 친동생 리암 갤러거와 날카로운 설전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 노엘이지만 팬들을 향한 이같은 자상한 면모에 한국 팬들은 그를 ‘츤데레’(차가운 모습과 따뜻한 모습이 공존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은어), ‘큰형님’으로 부르곤 했다.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에서도 이같은 면모가 고스란히 엿보였다.

4년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노엘과 팬 사이에 긴 말이 필요없었다. 실내체육관을 빼곡하게 채운 8000여 관객들은 체육관이 떠나가라 ‘노엘’을 연호했다.

당초 노엘은 28일 하루만 공연할 예정이었다가 시야제한석까지 전석이 매진돼 추가 공연 요청이 쇄도하자 이날 일정을 추가했다. 아울러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사전 이벤트인 스페셜 나이트 공연으로 일부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사흘에 걸쳐 만난 팬들은 1만 8000명에 달한다.

공연은 크게 노엘의 솔로곡과 오아시스 시절 히트곡으로 구성됐다. ‘프리티 보이‘(Pretty Boy)로 공연의 포문을 연 노엘은 새 앨범 수록곡 ’카운슬 스카이즈‘(Council Skies), ’오픈 더 도어, 시 왓 유 파인드‘(Open The Door, See What You Find), ’이지 나우‘(Easy Now) 등 신곡으로 분위기를 예열했다.

낯선 신곡도 곧잘 따라 불렀던 팬들은 노엘의 솔로 히트곡 ‘이프 아이 헤드 어 건’(If I Had a Gun)을 부를 때 떼창으로 화답했고 어쿠스틱한 반주가 인상적인 ‘데드 인더 워터’(Deae in the water)에서는 약속이나 한듯 휴대전화 불빛으로 공연장을 감싸며 큰형님과 호흡했다.

환갑이 목전인 노엘은 고음에서 다소 힘겨워하는 모습이었지만 ‘브릿팝’ 지존 록커다운 특유의 카리스마로 90분의 공연을 이끌었다. 팬들과 소통도 격의 없었다. 그는 “우리는 노엘을 사랑한다”(We love Noel)라고 외친 한 팬에게 “내가 더 사랑한다”(I love you more)라고 받아쳤고 앞좌석에 앉은 팬의 이름을 물은 뒤 “다음 곡은 당신을 위해 부른다”며 팬과 ‘밀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공연후반부 오아시스 히트곡 메들리를 들려주며 관객을 2000년대 초반으로 추억여행시켰다. ‘고잉 노웨어’(Going Nowhere), ‘디 임포턴스 오브 비잉 아이들’(The Importance of Being Idle), ‘더 마스터플랜’(The Masterplan),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등 그때 그 시절 오아시스의 히트곡들이 연이어 장내에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실내체육관이 떠나갈듯한 떼창을 들려줬다. 관객의 우렁찬 떼창이 노엘의 보컬을 압도할 정도였다.

노엘이 마지막 곡 ‘리틀 바이 리틀’을 부른 뒤 앙코르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무대에서 내려가자 관객들은 오아시스의 히트곡 ‘원더월’(Wonder Wall)을 부르며 노엘을 소환했다. ‘원더월’은 노엘이 지지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가 지난 2019년 리그 우승을 확정하자 당시 노엘이 맨시티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함께 부른 곡이다.

만면에 미소를 띄며 나타난 노엘은 앙코르곡으로 밥 딜런의 ‘퀸 더 에스키모’(Quinn the Eskimo), 그리고 오아시스의 시그니처 히트곡인 ‘리브 포에버’(Live Forever),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를 들려줬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팝송으로 꼽히는 ‘돈트 룩 백 인 앵거’를 부를 때는 관객과 무대 위 노엘이 하나가 된 듯 했다. 평소 한국 팬들을 ‘크레이지’하다고 표현했던 노엘은 수차례 관객에게 마지막 후렴구 ‘돈트 룩 백 인 앵거’를 되풀이하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여러분은 매우 놀랍습니다. 멀지 않은 때에 또 보게 될겁니다.”

mulga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