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항저우=김민규기자] “좋은 영향과 경쟁을 통해 영감을 준다면 그것이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라 생각한다.”

현명했고 묵직했다. ‘언중유골’(言中有骨, 말 속에 뼈가 있다)이다.

전설 ‘페이커’ 이상혁은 ‘e스포츠가 스포츠냐’는 황당한(?) 질문에도 의연하게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놨다. 아직도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던진 이상혁의 큰 울림이다.

올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중 하나는 e스포츠가 정식종목이 됐다는 점이다. 2026 나고야 대회에서도 이미 e스포츠는 정식종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e스포츠를 ‘국제대회에 무슨 게임이 들어가나’라고 폄하한다. 스포츠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심지어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꽤 많다. ‘게임 잘해도 금메달에 병역혜택까지 세상 좋아졌다’고도 비아냥댄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e스포츠가 이들이 틀렸다는걸 확실하게 보여줬다.

일곱 개 세부종목 중 네 종목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은 ‘금2, 은1, 동1’을 수확하며 전 종목 메달을 획득했다. 여기에 FC 온라인 곽준혁의 ‘패배를 수긍한 아름다운 포옹’ ‘44살 김관우의 한국선수단 최고령 금메달’ ‘LoL 대표팀의 中함대 침몰’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대표팀의 성장과 값진 은메달’ 등 수많은 감동스토리를 써냈다.

첫 대회를 훌륭하게 마무리한 태극전사들은 ‘금의환향’했다. 그런데 우리 LoL 대표팀이 귀국을 앞두고 가진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어이없는 얘기가 나왔다. 맏형이자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스타 이상혁에게 던진 질문이 화근이었다.

이상혁은 ‘별 중의 별’로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였다. 선수촌에서 다른 국가 선수들에게 찍어준 사진만 1000장이 넘는다는 후문.

이 자리에서 이상혁은 “LoL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높은 스포츠라고 자신 있게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리고 ‘e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에 대해 “스포츠는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경기를 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라며 “금메달을 따는 모습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스포츠가 계승한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정확히 짚은 답변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e스포츠가 많은 이에게 기쁨과 감동, 희망을 줬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다.

이미 ‘47억 아시아인의 축제’에서 증명해 보였다. 게다가 5년 전 국정감사 당시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닌 게임’이라고 했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LoL 종목 시상식에 참석해 직접 우리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기도 했다.

만약 이 회장이 5년 전과 같은 생각이라면 전형적인 ‘언행불일치’로 오직 성과에 함몰된 위선으로 비칠 것이다.

e스포츠의 첫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대한민국은 e스포츠 강국 위상을 확실히 드높였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았다. e스포츠 종목 다양화를 위한 생태계 확장과 학교스포츠로서의 제도적 지원 등 갈 길이 멀다.

이번 대회를 발판 삼아 e스포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당장 이달 한국에서 열리는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 국제올림픽위원회 실무진들의 참관 소식도 들려온다.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에서도 e스포츠가 당당히 설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체육계의 유관기관 등에 되묻고 싶다. ‘e스포츠는 스포츠입니까.’ kmg@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