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항저우=김민규기자]“처음 봤을 때 ‘페이커’형은 기계적이라 생각했다.”

수년째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들이야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지만 서로 다른 팀에서 모인 국가대표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종목에서 초대 금메달을 딴 우리 선수단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합을 맞춰온 ‘원 팀’의 느낌이랄까.

어색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한 달여간 동고동락하면서 그들만의 형제애가 싹을 틔웠다. 프로 e스포츠선수로서 서로의 방식을 배우고 흡수하며 성장한데 비례해 우정도 두터워진 셈.

그래서일까. 단 한 번의 세트도 내주지 않고 ‘5전 전승’으로 대회 금메달을 땄다. 한국 LoL 대표팀은 29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대만을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한 달여간 하루 16시간 연습 강행군으로 흘린 구슬땀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보상받았다.

이날 시상식을 마친 LoL 대표팀은 선수촌으로 복귀하기 전 취재진을 만나 메달리스트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김정균 감독을 비롯해 이재민·김동하 전력분석관, 결승전에 나섰던 다섯 명의 태극전사들이 함께 했다. 다만, 팀의 맏형인 ‘페이커’ 이상혁은 무작위 도핑테스트 대상에 포함돼 인터뷰에 뒤늦게 합류했다.

맏형 이상혁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스타임에 이견이 없다. 인기를 증명하듯 이번 대회에서도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비록, 감기로 인한 컨디션 악화로 8강(사우디아라비아)부터 준결승(중국), 결승(대만)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 상징성만으로 차원이 달랐다.

한 달간 함께 합숙생활을 한 다른 후배들에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상혁이 인터뷰에 합류하기 전 ‘룰러’ 박재혁과 ‘쵸비’ 정지훈, ‘카나비’ 서진혁에게 물었다.

5년 전 e스포츠가 시범종목이었던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박재혁은 “두 번째 같이 해봤는데, 처음에 (이)상혁이형은 기계적이고 생활이 FM(교과서)적인 사람일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실제로는 장난도 많이 치고 받아주기도 하고, 말도 걸어줘 놀랐다”고 말했다. 정지훈 역시 “팀원들과 있을 때는 밝고, 잘 대해주고 좋은 사람이다. 밖에서는 프로페셔널해서 대단한 사람이라 느꼈다”고 했다.

서진혁은 “(이)상혁이형은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였는데, 실제로는 이미지와 달리 좋은 사람이다. 기계적이지 않고 인간적이다. 가끔 하는 농담도 재밌다”며 “선수촌에 와서 상혁이형의 인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아시안게임 ‘원탑’이다”고 존경의 진심을 전했다.

이 순간, 도핑테스트에 갔던 이상혁이 복귀했다. 평소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그의 표정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목표했던 금메달의 기쁨과 끝났다는 후련함으로 읽혀졌다.

반대로 이상혁에게 함께 생활한 다른 팀 선수들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들 잘하는 선수다 보니 같은 팀이 돼서 굉장히 든든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인공지능(AI)과 같은 원론적인 대답을 내놨다.

그런데 이때 반전의 답변이 이어졌다. 이상혁은 “(정)지훈이는 솔로랭크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솔로랭크 1등까지 찍었다. 그 과정을 보는 게 재밌었다. 반면 (서)진혁이는 솔로랭크 못 올라가고 마스터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러면서 “(박)재혁이는 나와 솔로랭크 ‘1000점 먼저 찍기’ 내기를 했는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니 재밌었다”고 말하자 박재혁이 발끈했고, 신경 쓰지 않은 듯 이상혁은 “처음에 내가 점수가 낮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이때 박재혁은 “아니다. 정확히 내 점수가 더 낮았다”고 반박에 나섰지만 끝내 “상혁이형 팀 운이 좋았다”고 백기를 들었다.

그래도 이상혁은 맏형답게 후배들을 다독였다. 그는 “내가 금메달을 따는데 엄청나게 기여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금메달을 따준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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