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먹구름이 광주를 비껴갔다. 4위 쟁탈전 성격으로 치른 ‘단군매치’는 하늘이 허락한 셈이다.

이 귀한 경기에 진귀한 볼거리가 가득했다. 야구의 ‘꽃’인 만루홈런과 히트 포 더 사이클이 동시에 나왔다. 승패는 갈려 관중석 희비는 엇갈렸지만, 궂은 날씨에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를 찾은 7350명 관중은 기억에 남을 장면을 하루에 두 번이나 봤다.

주인공은 단연 두산 강승호(29)다. KBO리그 41년 역사상 최초의 ‘리버스 내츄럴 사이클링히트’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리버스 내츄럴 사이클링히트는 홈런을 시작으로 3루타, 2루타, 단타를 차례로 때려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을 뜻한다. 두산 이승엽 감독은 “오늘은 강승호의 날”이라는 말로 진기록의 주인공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강승호는 이날 6번타자 1루수로 선발출장했다. 1회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낸 그는 1-1로 맞선 3회 다시 앞서가는 좌월 홈런을 뽑아냈다. KIA 왼손 루키 윤영찬을 상대로 뽑아낸 자신의 시즌 6호 홈런. 그러나 KIA는 믿었던 선발 브랜든 와델이 4회말 이우성에게 만루홈런을 내줘 2-5로 승기를 내주는 듯했다.

전날 끝내기 승리로 4연승 휘파람을 분 두산의 기세는 만루홈런에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1사 후 좌전안타로 출루한 양의지가 김재환이 볼넷을 얻을 때 3루를 훔쳤다. 1사 1,3루 기회에서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강승호는 오른손 투수 김재열의 속구를 밀어 우중간을 갈랐다. 주자가 모두 홈을 밟는 사이 3루까지 내달려 여유있게 세이프된 강승호는 허경민의 좌전 적시타 때 득점해 5-5로 다시 균형을 맞췄다.

6회초 1사 후 잠수함 투수 임기영에게서 좌익수 왼쪽으로 날아가는 2루타로 기세를 올린 강승호는 9회초 1사 1루에서 상대 마무리 정해영에게서 투수강습 내야안타로 진기록을 달성했다. 정해영의 슬라이더에 타이밍이 살짝 빨라 배트가 부러졌는데, 타구가 투수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정해영이 글러브를 내밀었지만 발을 맞고 뒤로 굴절됐고, 강승호는 1루에 안착했다.

역대 30번째이면서 사상 최초의 역순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2021년 10월25일 이정후(키움)가 대전 한화전에서 달성한 이후 690일 만에 나온 진기록. 더구나 두산 소속으로는 2017년 6월7일 잠실 삼성전에서 정진호(은퇴)가 기록한 이후 6년3개월여 만에 나온 팀 여섯 번째 기록이다. 정진호는 4.2이닝 만에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썼는데, 강승호는 리버스 내추럴 사이클링히트로 진기록 제조 대열에 합류했다.

강승호가 진기록을 완성하자 허경민이 볼넷을 골라 누를 꽉 채웠고, 김인태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결승점을 뽑았다. 8회초 극적인 동점홈런으로 존재감을 각인한 박준영이 급히 마운드에 오른 장현식에게서 또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내 쐐기 타점까지 올렸다.

브랜든은 4.2이닝 7안타(1홈런) 6실점(4자책)으로 부진했지만, 이영하를 시작으로 김강률 김명신 정철원 등 불펜 4총사가 5.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 5연승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승리로 두산은 KIA와 승차를 지웠고, 4위 SSG를 0.5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KIA SSG보다 무승부 한 개가 적은 두산으로서는 경쟁팀보다 1승을 더 따내야하는데, 순위싸움 직접 당사자인 KIA와 주말 3연전 서전을 승리로 장식해 기세를 올렸다.

‘인생 경기’를 펼친 강승호는 “9회초 마지막 타석에서 기록 달성에 단타가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팀이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선행주자를 진루시켜야 한다는 생각만했다”고 말했다. 그는 “리버스 내추럴 히트 포 더 사이클이 최초 기록이라는 건 (몰랐지만) 기쁜 일”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내 실책 때문에 실점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팀도 이겼고, 좋은 기록을 세웠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팀이 순위싸움 중심에 있고, 매일 경기에 나서는 주전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강승호는 “경기하면서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했다. 충분히 역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로 절정의 팀 분위기를 대변했다. ‘미러클 두산’이 돌아왔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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