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성모병원 장례식장 7호실. 1세대 아이돌 그룹 H.O.T 멤버 문희준, 토니안, 강타, 장우혁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상주로 이름을 올린 다이나믹듀오의 개코(본명 김윤성·43), 최자(본명 최재호·43)와 인사를 나누고 장시간 빈소를 지켰다. 힙합가수 크러쉬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빈소의 주인공은 故 고경민 아메바컬쳐 전 대표다. 1세대 힙합신인 다이나믹듀오와 아메바컬쳐를 설립하고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고인은 약 2년간 병마로 씨름하다 지난 6일 별세했다. 향년 53세.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죽음에 수많은 연예관계자들, 그녀와 연을 맺었던 연예인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고인은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스타일리스트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힙합을 좋아하는 미대생이었던 고인은 서태지가 처음으로 제안한 스타일리스트 오디션에서 1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채용됐다.

고인은 서태지에게 ‘스노보드룩’에서 차용한 일명 ‘갱스터룩’을 제안했고 이 의상은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며 10~20대들의 패션트렌드를 선도했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의상을 눈여겨 본 정해익 SM 엔터테인먼트 전 대표(당시 H.O.T담당 실장)가 고대표에게 “SM엔터테인먼트가 준비 중인 아이돌 그룹의 의상을 담당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탄생한 의상이 H.O.T의 ‘캔디룩’이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상의 의상에 헐렁한 멜빵바지, 커다란 장갑과 망치는 지금까지 아이돌 콘셉트룩의 대표적인 의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캔디’를 리메이크한 NCT드림도 이 의상을 다시 입어 화제를 모았다.

힙합에 애정이 깊었던 고인은 2006년 다이나믹듀오와 함께 아메바컬쳐를 설립했다. 아메바컬쳐는 그때까지 변방의 음악으로 치부되던 힙합을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이끌며 쟁쟁한 힙합신을 발굴한 ‘힙합음악계의 성지’로 꼽힌다. 가수 크러쉬, 사이먼도미닉(쌈디), 이센스, 프라이머리, 리듬터치, 자이언티, 얀키, 플래닛시버, 필터, DJ프리즈 등이 아메바컬쳐를 통해 대중음악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고인은 가수들에게 누나같은 따뜻한 마음씀씀이와 배려를 보여준 리더였다. 원더걸스 해체 뒤 핫펠트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예은이 아메바컬쳐에 몸담던 시절, 예은의 불안한 마음을 꿰뚫어보고 그에게 심리 치료를 권한 것도 고대표다.

고인은 발병 뒤 한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최근까지 건강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에는 아메바컬쳐 사옥 이전 기념으로 직원들과 등산을 다녀오는 등 회복세를 보였지만 5~6월 들어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됐다.

하지만 숨지기 직전까지 최자의 결혼식을 걱정하며 “빨리 나아서 최자 결혼식에 꼭 가야한다”라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아메바컬쳐 관계자는 “최자가 고대표님의 건강 때문에 결혼날짜를 잡는데 고민이 컸다. 처음에는 신혼여행도 가지 않으려 했다”며 “하지만 대표님께서 ‘꼭 최자결혼식에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 날짜를 앞당겼는데 공교롭게도 대표님 발인 다음날이 됐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자녀가 없는 고인은 숨지기 직전 다이나믹듀오와 아메바컬쳐 최규상 부사장, 노영열 본부장에게 상주를 맡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네 사람은 공동상주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첫날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켰던 다이나믹듀오는 두 번째 날 취소할 수 없는 행사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빈소를 비웠다.

아메바컬쳐 관계자는 “고민이 컸지만 회사 직원들 모두 ‘다이나믹듀오는 무대에 설 때가 가장 멋있다는 걸 대표님도 아시니 최고로 멋진 무대를 보여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관객과의 약속을 위해, 하늘에서 지켜보는 고인을 위해 가슴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무대를 완성할 수 밖에 없는 가수들의 숙명인 셈이다.

소속사 대표를 보내고 9일 웨딩마치를 울리는 최자는 전날 발인 뒤 자신의 개인 채널에 “아메바의 어머니, 용감한 여성, 독불장군, 멋쟁이 우리 누나를 오늘 편안한 곳으로 보내드렸습니다”라며 “베풀기만 했던 누나가 남기고 간 많은 것들 항상 기억할게요. 사랑합니다”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또다른 멤버 개코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친누나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20여년의 긴세월 묵묵히 함께 해준 우리 경민 누나”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마음들 하늘에서 다 돌려받으시고 그곳에서 신나게 파티하시고 그림도 그리시고 하고 싶었던거 다하시면서 사세요. 사랑합니다. 우리 나중에 만나요”라고 적었다. 하늘도 여러 사람의 슬픔을 아는지 폭우가 쏟아졌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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