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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1999년 방송을 시작해 21년간 일요일 밤 웃음을 책임진 KBS2 ‘개그콘서트’가 폐지의 기로에 섰다.

‘개그콘서트’의 폐지설은 갑작스럽긴 했지만 공개 코미디 프로의 위기론 속에서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그간 숱한 새 단장의 노력에도 ‘개그콘서트’가 지닌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렌드의 변화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명성이 예전만 못한 데다 현재 MBC ‘개그야’, SBS ‘웃찾사’ 등이 씁쓸한 종영을 맞으면서 ‘개그콘서트’의 설자리 역시 좁아졌다.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잣대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브랜드 가치가 있다. 한때 시청률 30%대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모은 ‘개그콘서트’는 KBS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서 수많은 유행어 뿐만 아니라 김준호, 정형돈, 김병만, 이수근, 장동민, 박성광, 박나래, 장도연 등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 중인 스타들을배출해냈다. ‘갈갈이 삼형제’, ‘수다맨’, ‘봉숭아 학당’, ‘달인’, ‘마빡이’, ‘대화가 필요해’ 등 인기 코너도 셀 수 없이 많다. 네 번의 KBS 연예대상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2003, 2011, 2012, 2013)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시청률이 2%대까지 떨어지며 시청자의 웃음도 공감도 사지 못하는 형국이다. 가장 큰 변화의 축은 달라진 대중의 감수성이다.여성·외모 비하, 인종차별 등 과거에 애용해왔던 개그 소재에 시청자들은 더이상 가볍게 웃어넘기지 않게 됐다. 또한 공영방송 속 개그 프로의 표현의 한계와 명맥을 이어갈 개그맨 부재 등의 제약들도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일요일에서 토요일로, 그리고 금요일로 편성시간대가 바뀌면서 혼란을 빚었고 고정 시청층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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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방식의 변화든, 시즌2 준비든 현재 ‘개그콘서트’에게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다만 ‘개그콘서트’ 폐지설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 프로그램 자체의 존폐 여부보다 이로 인해 설자리가 없어질 개그맨들의 인력 문제일 것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점차 사라지고, 예능에서도 아이돌과 배우들이 예능인들의 자리를 꿰차면서 개그맨들의 설자리가 대폭 줄어든 상황이다.

물론 개그맨들 스스로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웃음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과거 ‘민상토론’ ‘대통형’ 등 과거 정치권과 기득권을 향했던 풍자와 예리했던 사회적 메시지 역시 실종된 지 오래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한계가 명확한 프로그램을 무한정 끌어안고 가기에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책임감 역시 막중하다.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KBS가 이대로 ‘개그콘서트’를 폐지한다면 프로그램 부진의 책임을 출연진에게 떠넘긴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개그콘서트 폐지 반대’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김하영 등 후배 개그맨들은 해당 청원글이 담긴 링크를 게재해 청원을 독려했다.

현재 KBS 내부에서는 엇갈린 목소리를 내면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 이후 KBS 측과 ‘개그콘서트’를 연출하는 박형근 PD는 “폐지와 관련해 논의한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KBS 예능국 고위 관계자 측에서 “폐지에 대해 신중히 논의 중이며 다음 주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혀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 KBS 관계자도 “최근까지도 관련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지상파 유일의 공개 코미디로서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고 그러던 중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상황이다”라고 폐지와 관련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최근 ‘콘서트 7080’, ‘연예가중계’, ‘안녕하세요’, ‘해피투게더’ 등 KBS 장수 예능들이 과거 명성을 지키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가운데, 21년 만에 존폐 기로에 놓인 ‘개그콘서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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