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욱
삼성 외야수 구자욱이 지난해 5월 30일 잠실 두산전에서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결과적으로 시간만 낭비했다. 삼성이 결국 구자욱(27)에게 사실상 두 손 들었다. “버티면 이긴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던 삼성은 석연찮은 이유로 선례를 남겼다. 사실상 총액 3억원으로 동결로 봐도 무방한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은 10일 구자욱과 지난해 연봉 3억원에서 2000만원 삭감된 2억 8000만원에 사인했다. 그런데 구자욱의 계약에는 인센티브 2000만원이 포함돼 있다. 즉 올해 성적에 따라 동결 수준의 연봉을 주겠다는 의미다. 삼성 홍준학 단장은 이날 스포츠서울과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구자욱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구자욱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억울하고 불이익을 봤을 수 있다는 데에 동의했다. 원만한 계약을 위해 조건을 조절했다”고 밝혔다. 옵션은 “평상시 하는 수준이라면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다”며 구자욱이 지난해와 같은 연봉 3억원을 수령할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했다.

구단과 선수간 첨예한 대립구도에서 선수가 승리한 사례로 남게 됐다. 최초 제시액에서 두 차례나 연봉을 올렸고, 사실상 동결로 구단 연봉 고과 과정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자인했다. 처음부터 동결로 계약을 맺고 기분좋게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구단은 명분도 실리도, 신뢰도 모두 잃은 꼴이 됐다. 삼성은 최초 구자욱에게 2억 6000만원을 제시했다가 거절 의사를 듣고는 2억 7000만원을 최종 제시액으로 내놨다. 구자욱은 불복해 계약을 거절했고, 경산 삼성라이온즈 볼파크에서 개인훈련을 하며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하지 않았다.

여론은 그간 구자욱이 구단에 보인 희생을 근거로 크게 압박했다. 일부 팬은 삼성라이온즈파크 외벽에 구자욱을 응원하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장외 지원에 나섰다. 불변할 것 같던 구단의 태도는 구자욱을 응원하는 팬들의 성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 단장은 “라이온즈가 구자욱 개인의 팀이 아니다. 버티면 연봉을 올려준다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완고한 입장을 견지했지만 결국 백기를 들었다. 표면상 2000만원 삭감으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지만, 옵션으로 연봉을 보존해주는 형태로 사실상 동결을 선택했다. 동결할 수 있는 계약이었다면 지난 2주간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한 셈이다.

계약서에 사인한 구자욱은 오는 13일 오키나와로 떠난다.

삼성은 구자욱과 계약으로 2020시즌 연봉 협상을 마무리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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