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혜리 기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사실상 폐기됐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의 마지막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렸던 지난 21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 데이터3법 등에 밀린 것이다. 사실상 공은 내년 4월 총선 이후 꾸려질 21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지난해 한국갤럽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관련 인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47.5%가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진료 금액이 적거나 시간이 없어서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을 지금보다 간편하게 만들자는 법안으로, 전국의 모든 병원과 보험사를 전산망으로 연결하는 것이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의 고용진, 전재수 의원이 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해야 하며, 의료기관은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요청 시 진료비 증명서류를 전자문서 형태로 전송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서류를 제공할 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또는 전문중계기관을 경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대형 병원은 특정 보험사와 개별 제휴를 통해 제한적인 청구 간소화를 이미 시행 중이다.

교보생명은 전국 8개 병원에서 ‘보험금 자동청구시스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시스템은 보험 가입 시 블록체인에 진료기록 송부 승인 정보를 기록해 병원과 보험사가 실시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은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교보생명 보험금 청구 안내 문자의 확인 버튼만 누르면 계좌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지난 9월엔 레몬헬스케어가 삼성화재와 손을 잡고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서비스를 통해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모든 진료증빙자료를 전자데이터(EDI) 형태로 보험사에 바로 전송할 수 있다. DB손해보험도 지난 6월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위해 핀테크 업체 지앤넷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법제화하면 이 같은 제도를 전국 모든 병원과 전 보험사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소비자 편익이 제고되는 것이다.

소비자와함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소비자교육지원센터 등 8개의 시민단체는 지난달 7일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실손보험의 청구를 소비자가 누락시키는 것은 청구 과정이 복잡하고, 이에 더해 여러 증빙서류를 구비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라며 “보험업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비자 편익이 증가할뿐만 아니라 자원낭비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결사 저지하겠다고 했다. 보험사들이 환자들의 진료 정보를 수집하면, 과거의 진료 이력 등을 문제 삼아 보험금 지급이나 계약 연장을 거절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이 걸려 있어 이렇게 보험사, 소비자,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해당 문제를 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21대 국회에서 논의된다고 해도 족히 3~4년은 더 걸려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입자만 3400만명에 달하는 실손보험(실손의료보험)은 실제 부담한 의료비(실제 손실 비용)만큼 보장해 주는 보험으로, 나라가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달리 민간 보험사에서 내놓은 상품이다.

김혜리기자 kooill9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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