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의 천재가 신세계를 연다. 0.9%의 비범한 사람이 통찰력을 가지고 그 길을 쫓아간다. 나머지 99%는 평범한 우리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특별함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W’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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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한국 여자야구의 미래’ 박민서(14)는 다른 별에서 온 아이다. 민서 아버지 박철희 씨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민서의 친가, 외가를 통틀어 집안에 운동선수는 민서가 최초가 아닐까 싶어요. 조선시대에는 있었을지 몰라도(웃음). 일가 친척들 모두 운동과는 거리가 있고 특히 저와 민서 엄마는 운동신경이 너무 안좋아서... 그래서 민서가 야구를 시작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상황이 비현실적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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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천재 소녀’ 민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취미삼아 성동구 리틀 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운드에서 100㎞ 이상의 공을 뿌렸고 타석에서 홈런을 뻥뻥 쏘아올리며 주변을 놀라게 했다.

정경하 성동구 리틀야구단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타고났다. 웬만한 남자 선수들보다 낫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민서의 부모님은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장에 어린 민서를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민서가 처음부터 야구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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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 따라갔는데 너무 시끄럽고 재미없었어요. 문학구장에 가면 나는 놀이방에 따로 있을 만큼 싫어했어요. 그런데 태권도를 하며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학교친구들과 캐치볼을 했는데,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리틀야구단에 들어갔어요.”“4학년 때 나도 들어가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 아빠가 반대하셨어요. ‘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냐’고 대들었죠. 그래도 아빠가 못하게 하자 ‘경찰서에 찾아간다’고까지 했어요. ‘아빠가 야구 안시켜 준다’고 이르려고요. 결국 리틀야구 주말반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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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는 행당중학교 진학 이후 팀의 중심타자 겸 투수로 활약하며 한층 더 성장한다. 패스트볼의 구속은 110㎞를 넘었다. 타선에서도 장타력을 자랑하며 리틀야구장 담장을 꾸준히 넘겼다. 타율은 4할대를 찍었고 출루율도 5할을 넘겼다.

지난해 두산 유희관과 잠실야구장에서 물병 맞추기 대결을 펼쳤는데, 이벤트 경기였지만 민서가 이겼다. 유희관은 민서의 타격에 대해서도 “진짜 14살이 맞냐?”고 감탄했다.

친구들은 민서를 ‘야천소’라고 부른다. 야구천재소녀. 민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긴 한데 노력하는 천재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학급반장이기도 하다. 추천받아 나갔는데 몰표를 받았다.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게 좋다고 방싯할 때는 또래 아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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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의 등번호 1번. 사실 원했던 등번호는 현 포지션인 투수와 1루수를 상징하는 13번이었다. 장래엔 투수와 4번타자를 합쳐 14번을 달고 싶다는 포부다.

“친구들이 별명을 부르며 놀리긴 해요. 기분이 좋긴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해요. 천재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데, 나는 노력하는 천재로 불리는 게 좋아요. 한국에 여자 야구선수가 별로 없다보니 언론에도 나오고, 주변에서 잘 한다고 해주는 것 같아요.”“솔직히 타고난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자동적으로 연습을 계속 하게 된 거예요. 야구를 하면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어요. 아직 성에 안차는데 내년이 내게는 리틀야구 마지막 시즌이라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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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의 책상이다. 야구공과 상장, 피규어, 그리고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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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바닥엔 글러브, 방망이, 장갑, 운동기구 등이 잔뜩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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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도 예외는 아니다. 야구 관련 장식물과 야구책으로 채워져 있다.

민서의 방은 온통 야구로 도배되어 있다. 바닥엔 각종 야구 장비와 웨이트트레이닝 도구로 가득하다. 책장은 야구 서적과 야구선수 사인볼과 피규어로 채워져 있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아이돌 사진은 없다.

방탄소년단에 대해 슬쩍 물었는데, 민서는 “노래는 좋아하는데, 방탄에 누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친구들이 방탄소년단 콘서트에도 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야구장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한다. 나도 좋아하는 선수가 있으면 따라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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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붙어있는 ‘최고가 되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민서는 가장 아끼는 물건으로 글러브를 꼽았다. 이유는 야구할 때 늘 같이 있기 때문이다. 투수글러브, 내야글러브, 1루수 미트 등 종류별로 다 있다. 야구박물관과 같은 민서의 방에는 오타니 쇼헤이(LA에인절스)의 만다라트처럼 자신만의 인생계획표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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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 한 잔’ 민서 부모는 미술과 음악 애호가다. 집안 곳곳에 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민서가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건, 부모의 열린 사고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고교졸업 후엔 일본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게 희망이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일본여자프로야구 리그에서 뛰고 싶어요(미국 여자프로야구 리그는 사라진 상태). 나보다 잘하는 선수와 겨루고 싶고,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뛰는 게 목표예요.”“귀국 후엔 스포츠기자가 되고 싶어요. 리틀에서 함께 야구했던 선수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중 2 박민서의 인생 나침반은 야구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민서는 어떤 것 하나에선 최고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대상이 야구다. 아직 꿈을 찾지 못한 사람도 있고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다. 민서는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찾아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민서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민서의 ‘W’는 진행형이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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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장래 성인이 된 민서는 일본여자프로야구에서 뛰고 싶어한다. 여자야구의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은 국내 여건상 한국에선 제대로 뛰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여자프로야구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미지의 낯선 길이다. 민지와의 인터뷰는 올해 첫 눈이 폭설처럼 내린 날 진행됐다. 눈을 밟으면 발자국이 남는다. 민서가 향후 어떤 발자국을 남길지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민서의 발자국은 야구선수를 꿈꾸는 또다른 아이에게 분명한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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