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앵란 신성일 결혼40주년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이라 55년간 함께 했다.”

배우 엄앵란이 4일 오후 고(故) 신성일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에서 취재진을 만나 고인을 보낸 심경을 밝혔다. 검은 상복 차림의 엄앵란은 딸의 부축을 받고 취재진 앞에 나서는 모습으로 한평생을 함께 한 사람을 잃은 애절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잦은 기침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목소리로 차분하게 고인을 돌아본 엄앵란은 고인의 마지막 말을 전하며 귀를 기울이게 했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때만 해도 고인이 정정하셨다.

그때도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있어서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했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지막 작품 생각만 하셨다고.

까무라쳐서 넘어가는 순간까지 영화 생각만 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이걸 먹어야 촬영을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이렇게 영화 생각만 할 수도 있구나 싶더라. 이런 사람이 버텨왔기에 우리나라 영화계가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동료 배우로서 신성일은 어떤 사람이었나.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라 철저히 사회적인 남자였다. 대본 안에 살았고 집안엔 없었다. 일에 미쳐서 집안 일은 내게 맡겼다. 영화계가 어려울 때 그래서 그분 덕에 히트작이 나오고, 수많은 제작자들이 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 외엔 신경을 안썼다.

집에 늦게 와 자고 일찍 일어나 나가는 생활이었다. 이제 좀 여유있게 재미있게 살라고 했더니….

-함께 배우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맨발의 청춘’이다. 흥행적으로 성공했고, 제작자도 잘 됐고, 역할적으로도 남편이 잘했다. 아무래도 우리 대표작이다.

-고인이 남긴 마지막 말은.

딸이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묻자 ‘수고했고, 고맙다. 미안하다 그래라”라고 했다더라.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이라 55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승에 가서는 아프지 말고 순한 여자 만나 재미있게 손붙잡고 잘 놀며 살았으면 좋겠다. 교통비도 안 들 것 아닌가. 구름타고 다니며 잘 살았으면 한다.

-팬들에게 한마디.

어젯밤(3일) 사망 오보가 나는 과정에서, 제주도에서까지 전화가 오더라. 어떤 남자는 내게 전화해 눈물까지 흘렸다. 팬들 전화를 받으니 가족사, 사생활은 차치하고, 잘 살아야겠다는 힘이 생긴다. 흉한 꼴 보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은 배우 엄앵란(위)과 신성일이 지난 2004년 결혼 40주년을 맞아 찍은 웨딩화보. 제공 | 소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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