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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에더리지가 카디프 시티 승격을 이끈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출처 | 닐 에더리지 트위터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2000년대 들어 오프시즌 동남아로 투어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격년으로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트로피’란 타이틀 아래 말레이시아와 태국, 홍콩, 싱가포르, 중국으로 토너먼트 대회를 개최했고, 이 대회가 아니어도 동남아를 찾는 구단들이 많았다. 이는 프리미어리그가 전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동남아 축구 실력이 떨어지다보니 정작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해당 지역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2007년 맨체스터 시티가 당시 구단주였던 탁식 치나왓 전 태국 총리의 영향으로 태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데려왔으나 노동 허가(워크 퍼밋)를 받지 못하면서 즉각 다른 나라에 임대됐고, 결국 잉글랜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2018~2019시즌 프리미어리그엔 동남아 선수를, 그것도 주전으로 뛰는 골키퍼를 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승격팀 카디프 시티의 수문장 닐 에더리지가 새 역사를 앞에 두고 있다.

올해 28살 에더리지는 현역 필리핀 국가대표다. 순수한 필리핀인은 아니고, 영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런던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 런던 연고 구단 풀럼 아카데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 2008년 성인팀과 계약했으나 이리저리 임대를 다니던 에더리지는 2015년 3부리그 월샬을 거쳐 지난해 챔피언십(2부) 카디프 시티 유니폼을 입으면서 인생이 뒤바뀌었다. 기존 주전이었던 리 캠프가 부상당한 사이 출전 기회를 늘리더니 카디프의 2017~2018시즌 46경기 중 45경기를 소화한 것이다. 카디프는 그의 활약 덕에 챔피언십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2위로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 직행권을 따냈다. 에더리지는 2011년 풀럼 소속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 한 경기 출전한 적은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출전 회수는 0으로 교체 명단에만 몇 차례 들었을 뿐이다. 올 여름 그에게 프리미어리그 데뷔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16세 이하(U-16) 잉글랜드 국가대표를 지냈다. 하지만 이후 대표팀 레벨에서 러브콜이 없자 몇 차례 사양한 끝에 2008년 어머니의 나라 필리핀 국가대표가 되기로 결심한다. 같은 영국 출신으로 필리핀 국가대표가 된 필 영허스밴드, 제임스 영허스밴드 형제의 권유가 그를 움직였다. 10년간 필리핀과 영국을 오가며 하부리그에서 고생한 끝에 동남아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문턱까지 왔다. 필리핀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출전권을 따내 한국과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만난다. 에더리지가 한국 공격수들의 슛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승격이 확정된 뒤 “정말 놀랍다”며 “필리핀 대표팀이 아시안컵 본선에 처음 오르는 등 지금 내 축구 인생은 큰 성취감을 느끼는 중”이라고 했다. 축구 인기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필리핀에서도 그의 프리미어리그 데뷔 가능성은 큰 화제다. 마리아노 아라네타 필리핀축구협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은 “에더리지는 카디프 시티 승격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이제 그가 필리핀 선수로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출전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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