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해태(현 KIA)의 마무리로 활약하던 시절의 선동열 국가대표팀 감독.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이웅희기자] 올시즌 앞집, 옆집 할 것 없이 뒷문이 흔들리고 있다. LG 정찬헌(28), 넥센 조상우(24) 등 젊은 뒷문지기들의 약진은 고무적이지만 후반 요동치는 경기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 야구국가대표팀 선동열(55) 감독과 메이저리그 토론토에서 뛰고 있는 오승환(36)처럼 위력적인 마무리 투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선 감독과 오승환 이후 방어율 1점대 미만의 마무리의 대(代)가 끊겼다.

KBO리그 불펜이 갈수록 불안하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2년 두산의 코치로 한국을 찾았던 이토 츠토무 전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감독은 당시 “한국 야구는 정말 재미있다.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 일본에서는 보통 7~8회까지 앞서면 뒤집히지 않지만 한국야구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토 전 감독의 말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기자는 웃어 넘길 수 없었다. 행간의 의미를 보면 일본프로야구에 비해 KBO리그 불펜이 약하다는 점을 제대로 꼬집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선 감독과 오승환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선 감독은 KBO리그 최고 투수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타자들을 압도했다. 1985년 해태에서 데뷔한 선 감독은 1994년(2.73)을 제외하면 방어율 2점대를 넘어선 적도 없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도 엄청난 짠물투를 펼쳤다. 특히 전문 마무리투수로만 시즌을 소화한 1993년과 1995년 기록은 엄청나다. 1993년 31세이브, 방어율 0.78을 기록했고 126.1이닝을 던지며 삼진 164개를 솎아냈다. 일본 진출 직전이었던 1995년에도 33세이브, 방어율 0.49를 기록하고 109.1이닝 동안 삼진 140개를 잡아내는 등 ‘철옹성’의 위력을 뽐냈다. 당시 상대팀들은 선동열이 몸만 풀어도 “경기는 끝났구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위압감이 대단했다. 마무리투수로서의 평균 방어율이 1점도 안된다.

오승환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삼성. 한국시리즈 2차전 9회초 등판한 오승환이 역투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약 10년 뒤 오승환이 선 감독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철벽 마무리로 우뚝 섰다. 2006년(47세이브, 방어율 1.59), 2007년(40세이브, 방어율 1.40) 모두 4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고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126세이브를 기록했고 1점대 방어율을 유지했다. 전성기였던 2011년에는 47세이브에 방어율 0.63으로 첫 1점대 미만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12세이브를 올린 오승환은 KBO리그에서 뛴 9년 동안 277세이브, 통산 방어율 1.69를 기록했다. 왜 그가 ‘끝판왕’이라 불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다.

최근 3년 동안 구원왕을 보면 2015년 당시 삼성에서 뛰던 임창용(현 KIA)이 33세이브, 방어율 2.83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당시 넥센에서 활약한 김세현(당시 넥센)이 36세이브, 방어율 2.60으로 구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난해에는 롯데 손승락이 37세이브, 방어율 2.18로 구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모두 방어율 2점대다. 최근 10년으로 확대해도 2011년 손승락(당시 넥센, 17세이브, 방어율 1.89)을 제외하면 1점대 방어율 구원왕이 없다.

[포토]마지막 투수로 등판한 조상우
넥센 조상우가 21일 LG와 넥센의 시범경기 9회초 등판해 역투를 펼치고 있다.<스포츠서울DB>

오승환이 해외로 진출한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표적인 마무리투수로 이름을 날린 임창용, 손승락 등의 뒤를 이어 올해 정찬헌, 조상우가 KBO리그 마무리의 세대교체 선두주자로 치고 나왔다. 정찬헌은 187㎝, 94㎏, 조상우는 186㎝, 97㎏로 체격도 서로 비슷하다. 둘 모두 선 감독, 오승환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들이다. 선 감독, 오승환처럼 빠르고 묵직한 직구를 기본으로 하는 점도 비슷하다. 4월까지 정찬헌은 16경기에서 9세이브 방어율 3.18을, 조상우는 12경기에서 6세이브, 방어율 4.85를 기록 중이다. 조상우의 방어율은 최근 2경기 실점으로 치솟았을 뿐 이전 10경기 방어율은 2점대였다.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천재성을 발판삼아 큰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대기(大器)’로 완성돼 선 감독, 오승환의 뒤를 이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마무리투수가 되길 기대해본다.

iaspir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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