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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해남 ‘미황사’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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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장남 함재 기효회가 지은 정자 ‘칠송정’

[해남·광주=글·사진 스포츠서울 황철훈기자] “투어와 트래블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라고 시작하는 라디오 광고가 있었다.“투어는 관광을, 트래블은 진정한 여행을 의미하지요”라며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한다. 낯선 곳을 유람하며 단순히 구경하는 것이 관광(Tour)이라면 여행(Travel)은 낯선 곳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체험 같은 것 말이다.한국관광공사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진정성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전통문화 체험관광’으로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 육성해 문화관광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전국 5곳의 프로그램을 선정한 데 이어 올해도 5곳을 추가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총 10곳에서 전통문화 체험관광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남도의 예술과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예술기행(아트투어)이 주목받고 있다. 전남 해남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수묵기행’과 광주 광산의 ‘비밀의 서원 월봉’이 바로 그것이다. 목포 성옥기념관에서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공재 윤두서 남농 허건 등 당대를 주름잡았던 대가들의 작품을 큐레이터의 알찬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녹우당에선 종손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다과로 올려진 차와 종가 내림음식인 비자강정도 음미하고, 땅끝 마을 ‘미황사’에선 1000가지 표정의 ‘천불’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만불이 솟아있는 달마산과 대웅보전에 새겨진 게와 거북이도 찾는다. 해창주조장에 들러 전통 막걸리 한 사발에 근심을 풀고 붓끝에서 피어난 수묵화와 구성진 판소리를 들으며 멋과 풍류에 취할 수 있다. 아울러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내는 푸짐한 남도 한정식은 필수코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깊어가는 가을, 맛과 멋이 흐르는 풍류남도로 예술기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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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옥기념관 뒤로 유달산이 자리하고 있다.

◇목포 문화쉼터 ‘성옥기념관’

목포 유달산 아래 자리한 성옥기념관은 예술을 사랑한 조선내화 창업자인 성옥 이훈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문화공간이다.

“내가 기업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소리꾼이 되었을 것이다” 이훈동은 입버릇처럼 말하며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보였다. 또한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기념관에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공재 윤두서, 남농 허건 등 근현대를 아우르는 대가의 작품과 구름과 비상하는 용이 그려진 청화백자운룡문호, 청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백자대호 등 다양한 도자기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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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옥기념관 제1전시실

특히 남농 허건(1908~1987)의 작품 중 유독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금강산 보덕암’(1943년 작)이 시선을 끈다. 1940년대 금강산을 12차례나 오가며 그렸다는 ‘금강산 보덕암’은 황토물을 들인 닥종이에 금강산의 절경이 섬세한 붓놀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암자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표현하기 위해 조개껍데기를 곱게 빻아 사용했다는 큐레이터의 설명이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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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옥기념관에서 행촌문화재단 이승미 대표가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행촌문화재단 이승미 대표는 “세계적인 명화 모나리자도 루브르박물관 창고에서 발견되기 전까진 한낱 이름 없는 그림에 불과했다”며 “세계적인 명화를 만든 건 결국 사람들의 관심”이라고 말했다. 또한 “윤두서의 초상이 모나리자 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며 “우리 문화예술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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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동정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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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동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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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석등과 석탑, 정원수와 잘어우러져 있는 이훈동정원

성옥기념관 뒤편에는 호남 제일 정원 이훈동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1930년대 일본인 부호가 소유하고 있던 것을 1950년대에 이훈동이 인수했다. 정원에 들어서면 향나무를 비롯해 각종 정원수가 정연하게 다듬어져 있고 곳곳에 일본식 석등과 석탑이 뚝뚝 박혀있다. 정원 한가운데는 우리나라 서원 양식으로 꾸며진 일본풍 저택이 있다. 안뜰에는 너른 잔디마당과 아담한 연못을 조성해 놓았고 저택 입구에는 후박나무와 향나무 등을 심었다. 건물 뒤로 그림 같은 유달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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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입구엔 500년의 역사를 오롯히 지켜낸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6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녹우당’

전남 해남의 녹우당은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 종택으로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지었다. 덕음산을 등지고 그 줄기인 성매산, 옥녀봉, 호산이 마을을 감싼다. 동쪽에서 시작된 개울이 마을 앞 들판을 흐르고 안산이 원경으로 펼쳐져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터다. 구례 운조루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 명당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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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사당

녹우당(綠雨堂)은 초록비가 내리는 집이란 뜻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바람이 불면 집 앞 은행나무 잎이 비처럼 떨어진다 하여 유래됐다는 이야기와 집 뒤의 대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면 ‘쏴’하는 소리가 마치 비 오는 소리 같다 하여 이름 붙였다 주장하기도 한다.

녹우당 앞엔 500년의 세월을 오롯이 지켜온 은행나무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은행나무 옆 솟을대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녹우당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 현판글씨 ‘녹우당’은 공재 윤두서의 절친한 친구인 옥동 이서가 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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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앞쪽의 차양구조를 한 독특한 구조인 겹처마가 시선을 끈다.

사랑채의 앞쪽엔 차양구조를 한 독특한 구조인 겹처마가 시선을 끈다. 줄지어 선 기둥이 마치 회랑을 연상시킨다. 사랑채의 평면은 높낮이가 차이가 난다. 왼쪽 평면이 한 단계 내려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기거하는 공간을 높낮이로 구분해 놓았다. 뿌리 깊은 유교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사랑채는 고산이 효종에게 하사받은 집이다.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모셨던 스승이 바로 고산이다. 임금이 된 효종이 고산에게 이 집을 하사했다. 원래 수원에 있던 집을 배로 옮겨와 이곳에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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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지붕 위에는 솟을지붕 모양 작은 지붕이 앙증맞게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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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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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의 14대 종손인 윤형식 씨가 사랑채 대청마루에 앉아 녹우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랑채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며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다. 안채는 ‘ㄷ’자 모양으로 사랑채와 합쳐져 ‘ㅁ’자 구조를 이룬다. 건물 중앙 대청마루 3칸과 함께 좌우 양쪽으로 창고와 부엌 등이 있다. 특히 부엌 지붕 위에는 솟을지붕 모양 작고 아담한 지붕이 앙증맞게 솟았다. 우리 전통가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구조로 환기용 구조물이다. 안채는 현재 고산의 14대 종손인 윤형식 씨가 거처하며 때때로 손님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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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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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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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녹우당 아래에는 고산 유물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이 대표적이다. 치켜 올라간 매서운 눈초리와 굳게 다문 도톰한 입술, 한올 한올 섬세하게 묘사된 수염은 마치 실제인 듯 생동감이 넘치며 강렬한 눈빛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밖에 고려시대 유일한 노비문서인 ‘지정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고산의 장원 급제 답안지, 역대 왕들의 교지 등 흥미로운 얘깃거리 가득한 유물들이 총 4600점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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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미황사로 들어가는 길. 끝없이 계단이 펼쳐진다.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해남 달마산 아래 터를 잡은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다. 창건 설화로는 서역 우전국(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가득 싣고 온 배가 도착하자 의조화상과 향도 100여 명이 그 배를 맞이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전각을 1598년 중창, 2008년 삼창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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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자하루를 마주한다. 자하루는 미황사의 미술 전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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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뒤로 부처를 그려넣은 1000개의 돌, 조병연작가의 작품 ‘천불’이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성문처럼 누각이 나타난다. 바로 자하루미술관으로 미황사가 지난해부터 전문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자하루 한쪽 벽면엔 부처를 그려 넣은 1000개의 돌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바로 조병연 작가의 작품 ‘천불’이다. 평온한 듯, 우는 듯, 찡그린 듯한 서로 다른 1000가지의 표정과 모습을 한 천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네 인생사를 표현한 듯 가슴 한켠이 애잔해진다.

게와거북이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에 새겨진 게와 거북이

자하루를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주상절리처럼 불쑥 솟아있는 기암괴석이 내달리듯 펼쳐진다. 창건설화 속 금인(金人)이 봤다던 일만불을 보는 듯하다. 달마산을 뒤로하고 미황사 중심 전각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오랜 세월 빛바랜 단청은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듯 기품과 위엄이 넘친다. 주춧돌에는 게와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창건 설화에 나오는 바다를 암시한다. 따라서 대웅보전은 설화 속 배인 셈이다.

미황사는 이달 28일에 괘불제와 함께 음악회를 연다. 괘불은 바깥에 내거는 불교 그림이다. 특히 미황사 괘불(보물 1342호)은 높이 12m, 폭 5m의 초대형 크기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불화다. 괘불제는 1년에 단 한번 공개하는 괘불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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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아름다운 해창주조장은 전통방식 그대로 막걸리를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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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주조장의 막걸리와 안주로 내놓은 피조개

◇전통을 빚는 해창주조장

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창주조장은 원래 일본인 시바다가 짓고 꾸민 집이다. 해방 후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시작한 이곳은 현재 4번째 주인 오병인, 박리아 부부가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다. 감미료를 넣지 않은 이 집의 막걸리는 달지 않고 담백하다. 또한, 걸쭉하고 진한 전통 농주로 쌀막걸리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육자배기와 수궁가 등 남도 명창이 뽑아내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막걸리는 자연과 소리가 어우러진 천상의 풍류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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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

◇선비의 숨결이 살아있는 비밀의 ‘월봉서원’

광주광역시 광산동에 자리한 월봉서원은 1578년 고봉 기대승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고봉은 조선 대표 성리학자로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과 13년간 120여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뜨거운 논쟁을 펼친 인물이다. 32살 신출내기 선비가 스물 여섯 살 연상의 대학자 퇴계와 사상 논쟁을 벌인 것만으로 그가 얼마가 뛰어난 학식을 가진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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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에서 초등학생들이 택견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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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카페 ‘다시(茶時)’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마을 입구 한옥카페 ‘다시(茶時)’는 차를 음미하며 삶을 돌아보는 선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일명 선비체험의 준비운동인 셈이다. 고즈넉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유생복으로 갈아입고 유건을 쓰면 본격적인 선비의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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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 뒤편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백우산 중턱에 고봉묘소가 자리한다.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마을길로 나선다. 가을 정취 가득한 마을 돌담길이 자연스레 길을 연다. 돌담길 너머 가지 뻗은 감나무엔 주렁주렁 열린 감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월봉서원 뒤로 산길이 이어진다. 소나무가 울창한 사색의 숲길로 일명 ‘철학자의 길’이다. 당시 고봉도 걸었던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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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묘소

쉬엄쉬엄 자연과 벗하며 걷다보면 백우산 중턱에 자리한 고봉의 묘를 볼 수 있다. 고봉의 묘를 지키는 오른쪽 문인석은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6.25 당시 교전으로 생겨난 자국이다. 묘를 지나 편백숲 길을 따라 걸으면 암자는 없고 터만 남은 귀전암 터에 다다른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철학자의 길은 조용한 명상과 사색의 길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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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브실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와 나물로 차려 낸 너브실 밥상.

선비의 산책이 끝나면 너브실 밥상이 차려진다. 너브실 마을에서 재배한 채소와 나물로 정성스레 준비한 건강한 밥상이다. 너브실 마을(광곡마을)은 행주 기씨 집안의 집성촌으로 . ‘너브실’은 넓은 들판이란 뜻이지만 정작 그런 땅은 보이지 않는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여행정보●먹거리=

해남의 한정식 전문점 한성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던 음식점으로 더욱 잘 알려져있다. 시골 한옥집 모습의 식당은 마치 친척집에 놀러온 듯 정겹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방에 들어가 한참을 기다리면 산해진미 가득한 커다란 밥상이 통째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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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한성정의 상차림

상다리가 휠 정도로 푸짐하게 차린 남도 밥상이다. 떡갈비를 비롯해 육회 낙지 탕탕이와 홍어삼합, 문어숙회, 불고기, 전복찜, 각종 전과 젓갈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차려낸 음식에 입이 쩍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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