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천재야구소녀'.


김라경(17) 선수에게 붙은 수식어다. 중학생 때부터 100km를 상회하는 구속을 자랑하며 방송에 출연하기도 한 김라경 선수는 지난 9월 부산에서 열린 '2016 기장여자야구월드컵'에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천재야구소녀'라는 수식어와 함께 어린 나이에 많은 관심을 받다보니 부담감도 컸을 터다. 하지만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고등학교 1학년 소녀는 이 또한 자신이 극복해야할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보인 당찬 면모에서 그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여자야구 발전을 위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0월 말, 경기도에 위치한 야구장에서 김라경 선수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여자야구 월드컵이 끝난지 두달이 되어간다. 근황이 궁금하다.


김라경 : 월드컵이 끝난뒤 평소 생활로 돌아갔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업을 마친뒤에는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고,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닌다. 금요일 밤에는 경기도에 있는 할머니 댁에 와서 하루를 자고 주말에 소속팀인 후라여자야구단에서 연습을 하거나 경기을 뛰고 다시 계룡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Q. 야구월드컵 이전부터 팔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지금 건강은 어떠한가.


김라경 : 월드컵 전부터 팔상태가 좋지 않아서 진통소염제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통증이 심해지더라. 심지어 대회 일주일전까지 공도 던지지 못할 상태였다. 제대로 된 연습이나 경기도 못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대회를 나갔다. 하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고 트레이너 분이 관리를 해주셔서 겨우 대회에서 공을 던질 수 있었다. 파키스탄전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고 구속이 102km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회가 진행되면서 상태가 나아졌다. 지금은 월드컵 이후 쉬면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 많이 좋아졌다.


Q. 야구월드컵 이후 여러 인터뷰와 방송 등을 통해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인기를 실감하나


김라경 : 조금 실감한다(웃음). 월드컵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전부터 합숙생활을 해서 14일 정도 학교를 빠졌다. 월드컵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반에서 박수를 쳐주더라. 사인해달라고 온 친구들도 많았다. 쑥스러웠다. 또 학교에서는 내 인터뷰가 실린 신문기사를 오려서 도서관 앞이나 교실 앞에 붙여놨더라. 선배님들이 지나갈때마다 알아봐주시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서 실감이 많이 났다. 하지만 나에 대한 관심이 여자야구에 대한 관심까지는 잘 이어지지 않아 안타깝기도 하다.


Q. 우리나라에서 여자야구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 본인도 알고 있었겠지만 여자야구 월드컵에 참여하면서 선수 선발 이라던지 지원, 또 강팀과 상대하면서 열악한 부분들을 더욱 실감했을 것 같은데.


김라경 : 그 전에도 여자야구 인프라가 열악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선수 선발 과정도 어려웠고 팀이 꾸려진 후 연습을 해야하는데 다들 본업이 있다보니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모든 나라들과 수준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거기서 오는 좌절감이 컸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회가 끝나고 집에와서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너무 답답하고 ‘나는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큰 대회라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국가대표로 뽑혀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다녀오니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거다. 한달간을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또 2년마다 야구 월드컵이 있다. 여자야구가 관심을 받으려면 일단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하는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잘 되어있지 않고 가르쳐줄 사람도 마땅치 않다. 지원도 열악하다. 정말 어렵다.


Q. 일본 프로야구팀에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진학 후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며 응하지 않았다. 사실 야구를 하기위해 세계에서 가장 여자야구가 활성화된 일본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진출 후 다른 한국여자 선수들의 해외진출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김라경 : 작년에 선동열 감독님과 운 좋게 인연이 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결국엔 어렵다는 거였다. 가려면 갈수는 있다. 나도 많은 고민을 했다. 일본에 가서 야구를 열심히 해서 적응을 잘하고 프로입단도 하면 많이 알려질 거란 생각은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일본을 가면 중졸이다.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간 상태에서 만약 부상을 당하거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이도저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일본에 가있다고 해서 국내에서 여자야구 활성화가 돼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를 가면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대학에 들어가서 여자야구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공부는 잘 하고 있나?) 죽어라 하고 있다(웃음). 전교에서 10등 안에는 든다.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Q. 우리나라는 아직 여자야구 실업팀도 없을뿐더러 야구선수로서 경제적인 수입을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김라경 : 사실 많은 분들이 '여자야구로 밥벌이 할 것도 아니고 직업도 없는데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 공부를 해야지'라고 얘기한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야구를 그만큼 좋아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 가치관에는 야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하는거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뒷바라지 해주시니까 더 힘들것이다. 미안한 마음도 크다. 하지만 나는 야구가 좋으니까 계속 야구를 하고 있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참 신기하다.


내가 나이도 어리고 관심을 많이 받다보니 여자야구 발전을 위한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부담도 많이 있다. SNS를 통해 많은 여성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나 '라경선수를 통해 저도 용기를 얻었어요'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결국엔 내가 야구를 열심히 해 실력을 키워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여자야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야구도,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다.


Q. 몇 년 후의 일이겠지만 대학진학 후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둔 것이 있나.


김라경 : 일단 좋은 대학교를 가서 활동범위가 넓어져야 한다. 어려서 잘 모르지만 ‘좋은 학위를 받아야 활동범위가 넓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체육교육학과 진학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체육도 많이 활성화가 됐다. 체육 교사도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 자격증을 따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 이 직업이면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어리고 시야가 좁아 아는 것이 많이 없지만 일단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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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장원기자 superpow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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