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김인식감독
김인식 ‘프리미어 12’ 감독 겸 기술위원회 위원장2015. 9. 17.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이환범선임기자] “야구를 가르쳐야 한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한 해가 밝았다. 지난해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이후 처음 10구단 체제하에서 팀당 144경기의 대장정을 소화하며 풍성한 기록의 향연을 벌였고, 프로야구 발전을 위한 새 장을 열었다. 시즌이 끝난 후엔 세계 야구강국 12강이 겨루는 신설된 ‘프리미어12’대회에서 처녀 우승을 달성하는 영광도 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고액 프리에이전트(FA) 연봉선수의 해외원정도박사건, 금지약물 복용 등 야구선수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졌다. 구단들은 적자타령인데 FA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KBO리그의 위상제고로 국내 스타플레이어들의 해외진출은 러시를 이뤘지만 국내프로야구에는 흥행에 위협요소로 다가오고 있다. 선수난을 해소할 척박한 야구저변을 어떻게 확대하고 키워 갈지도 여전히 숙제다. 이제 35살이 되는 프로야구가 나아갈 길에 대해 스포츠서울은 야구원로들부터 고언을 들을 계획이다. 그 첫 시작으로 ‘국민감독’으로 추앙받는 김인식 KBO 기술·규칙위원장부터 새해 한국야구계가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만난 김인식 위원장은 “야구를 가르쳐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야구선수들에게 야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큰 뜻이 담겨 있다. 야구는 많은 스포츠 종목 중 가장 규칙이 복잡하고 속고 속이는 상대성까지 단순한 운동능력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는 종목이다. 그 속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도 말한다. 김인식 위원장이 말하는 야구는 단순히 치고 던지는 기술 배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런 인생을 포함한 모든 것을 가르쳐야한다는 말로 함축된다.

김인식 위원장은 “우리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했다지만 진짜 우리가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여러가지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며 선수들의 도덕성 해이 얘기까지 나오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겠나. 선수들이 부족하다면 잘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야구를 잘 가르쳐야 한다”며 “갑자기 웬 야구를 가르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길은 진정한 야구를 가르치는데 있다. 훈련은 중요하다. 하지만 막연하게 수 천개의 공을 던지고 쳐봐야 그건 그냥 연습에 불과하다. 수 없는 반복 연습을 통해 몸에 익히는 것 또한 단순한 연습에 불과할 뿐이다. 야구를 가르친다는 의미는 그런 기능 이상의 무언가를 말한다. 이럴 때는 이렇게, 또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까에 대해 계속 화두를 던지며 선수들이 깨닫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흔히 야구 잘 하는 선수들에 대해 야구 현장에서는 ‘야구를 알고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야구를 알고 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기능이 뛰어나다는 얘기가 아니라 주자상황, 득점상황, 팀이 처한 상황 등 모든 것을 숙지하고 고민하면서 그 상황에서 선수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인가를 끊임 없이 연구하고 해답을 찾을 줄 안다는 것을 뜻한다. 김인식 위원장은 “코치들이 선수들을 가르칠 때 야구에 대해 끊임 없이 화두를 던지고 깨닫게 해야한다. 그런데 야구를 잘 하는 것은 야구적인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이 연결된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 야구도 잘 하고, 야구를 잘 하는 사람이 인생도 잘 산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끊임 없이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한다”고 지도자들의 의식개혁도 당부했다.

프로야구의 젖줄인 아마추어 고교야구는 수업과 야구를 병행하게 하자며 주말리그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선수들의 기량향상은 예전에 비해 떨어지고,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김인식 위원장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김인식 위원장은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공부를 못하더라도 수업에 들어가고 선생님한테 혼도 나야 한다. 야구선수 이외 다른 선수도 사귀며 넓은 시야를 갖춰야 한다. 기량부족? 그건 프로에 와서도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 캐치볼부터 제대로 가르치며 기본에 충실해야하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인성교육에 충실해야한다. 사람이 먼저 돼야 야구도 잘 할 수 있다. 프로에 와서도 끊임 없이 지도자들이, 선수들이 올바른 길을 걷도록 반복해서 지도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우리도 지금의 모습이 그냥 완성된 게 아니다. 시작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인생을 살면서 배우고 겪고 느끼면서 생각도 발전해나간다. 결국 모든 것이 상식선에서 판단된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그런 상식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해외원정도박, 그라운드 폭력, 약물, 불법 스포츠도박 그런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연유한다. 선배들은 자신이 배운 것들을 후배들, 제자들에게 제대로 돌려줘야한다. 지도자들이 더 각성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선수, 특히 투수들의 기량향상에 대한 생각도 피력했다. 김인식 위원장은 “프리미어12를 치러보니 다른 나라, 특히 일본과 비교해보면 타자(야수)는 경쟁력이 있는데 투수력이 확실히 떨어진다. 어떻게 잘 막아 이기긴 했지만 체격이 우리에 비해 크지 않은데도 150㎞대 중반을 던지는 선수들이 즐비하고 제구력도 좋다. 우리 프로야구는 각팀 선발투수를 보면 대부분 1~2선발은 외국인선수 몫이고 국내선수는 나머지 3자리를 차지하는데 시즌 시작후 불과 한 달 만에 절반 이상의 팀들이 선발 로테이션이 와해되는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선수들 기량이 늘 수는 없지만 한 시즌을 버티는 체력과 몸을 만들 수는 있다고 본다. 지도자들이 더 열심히 해야한다. 당신이 와서 해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가 없으면 가르쳐서 만들어야하고 그게 지도자들의 몫이다. 가르쳐도 안된다면 왜 그런지 다시 한 번 끊임 없이 연구해야한다”고 말했다.

FA선수 몸값에 대해서는 선수와 구단이 다시 생각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인식 위원장은 “선수는 돈을 많이 받으면 좋다. 그런데 이익이 나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데 구단의 적자폭은 늘어난다. 원인은 선수의 욕심뿐만 아니라 구단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 프로구단으로서 제대로 운영하는게 아니라 모 구단의 지원을 받다보니 당장의 성적을 위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줄도 모르고 적정선 이상으로 금액을 올려놓았다. 구단이나 선수 모두 진정한 프로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특급선수들의 해외유출에 대해서 김위원장은 “분명히 처음엔 국내프로야구 흥행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나가야 한다. 그게 우리 야구발전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당장은 스타플레이어의 공백이 느껴지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면서 야구하는 선수가 더 많아질 수 있고,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통해 또 다른 선수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단지 그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가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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