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손흥민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오른쪽)의 아버지인 손웅정 손(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이 4일 춘천 공지천 인조잔디구장에서 유소년 선수와 몸을 풀고 있다. 춘천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춘천=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레버쿠젠이 돌변한 건 사실이다.”

워낙 깜짝 이적이었던 탓에 뒷이야기가 관심사다. 손흥민(23)의 토트넘행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에이전트 티스 블라마이스터도 있으나 아버지이자 축구 스승인 손웅정 ‘손(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이 꼽힌다. 한국 최고의 축구스타를 직접 길러낸 그이기에 손흥민만큼이나 팬, 미디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손흥민이 차범근, 박지성 등 지금까지 한국 축구의 얼굴로 대변한 인물과 다른 점은 일반 학원 축구에서 성장하지 않은 점이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손(Son)축구아카데미의 총감독인 부친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았다. 유소년 때 아버지를 따라 지겹도록 기본기를 연마한 그는 프로가 돼서도 나이에 맞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지닌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다른 유럽파 선수가 프레시즌 때 자유롭게 쉬면서 개인 훈련을 하나 손흥민은 춘천으로 내려가 새 시즌에 필요한 기술과 체력 훈련에 임하고 있다. ‘손 부자’의 축구 프로젝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적 과정에서 손흥민의 전 소속팀인 레버쿠젠 동료와 지도자가 이 같은 한국의 ‘사커 대디’ 문화에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내에서도 손 감독이 성인이 된 아들을 이제 놓아줘야 하지 않느냐고 보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손흥민이 혜성같이 등장한 선수가 아닌, 아버지의 헌신으로 이뤄낸 작품임을 축구 팬 사이에 잘 알려지면서 이젠 모두가 응원하는 ‘축구 부자’가 됐다. 말 그대로 손흥민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잘 아는 것도 아버지다. 다만 손흥민이 어느덧 대표팀의 주력 요원으로 거듭나는 등 훌쩍 큰 것에 아버지도 공감한다. 축구 인생 로드맵에서 주요 사안은 함께 처리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아들의 몫이다. 이적과 관련해서도 수많은 미디어가 아버지의 입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듣고자 했으나 정중하게 거절한 이유다. 4일 춘천에서 스포츠서울과 단독으로 만났을 때도 아들의 비전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이적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소문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견해를 밝혔다.

◇ “훈련 무단 불참? 프로 선수가 말이 되느냐”

레버쿠젠 하칸 찰하노글루는 지난달 27일 라치오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 홈경기를 앞두고 “손흥민이 팀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했고,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며 “손흥민은 윗사람(아버지)에게 잘못된 조언을 듣고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당시 런던으로 이동한 손흥민은 메디컬 테스트를 받았으며, 토트넘 측과 세부 계약 협상에 나선 상황이다. 이 얘기는 독일에서 최초로 공개됐고,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손 감독은 “프로 선수가 구단의 허락 없이 이적을 추진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건 계약서에도 명시된 것”이라고 반문했다. 레버쿠젠은 2년 전부터 꾸준히 손흥민에게 관심을 보인 토트넘으로부터 최대한 거액 이적료를 받기 위해 보안을 강화했다. 400억에 달하는 금액이 제시되자 손흥민에게 48시간 런던행을 허락했다. 레버쿠젠 구단은 라치오와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경계했다.

손흥민 파더보른
손흥민이 레버쿠젠 시절인 지난 시즌 24라운드 파더보른 원정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오른발 슛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고 있다. 캡처 | 레버쿠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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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오른쪽)이 지난달 28일 토트넘 입단 후 첫 훈련에서 볼 경합을 하고 있다. 출처 | 토트넘 구단 트위터

◇ “레버쿠젠 남고 싶었으나…행동이 변했다”

“레버쿠젠은 분명 좋은 구단이다. 나와 흥민이는 독일(레버쿠젠)에 더 남아서 뛰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무조건 토트넘의 손을 잡은 건 아니다. 손 감독은 지난 겨울에도 기자와 만났을 때 레버쿠젠 생활에 만족해했다. 독일 최고 수준의 팀으로 지난 시즌 17골을 넣으며 정상급 골잡이로 발판을 마련한 손흥민에게 한,두 시즌은 더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화학,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16만 명이 사는 조용한 레버쿠젠 도시도 축구에 전념하기 좋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 말부터 레버쿠젠은 손흥민에게 애매한 행동으로 일관했다. 특히 로저 슈미트 감독 체제에서 갈수록 수비 위주의 축구를 강화했고, 역습에 치중했다. 공격적인 구실을 해온 손흥민에게도 수비 가담을 자주 요구해왔다. 또 공격으로 나갈 때도 오른쪽의 카림 벨라라비를 활용하는 인상이 짙었다. 손 감독은 “(자국 선수를)일부러 키우려고 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벨라라비나 전방 슈테판 키슬링에게 뻥 차고 공격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더구나 손흥민의 백업으로 뛴 율리안 브런트가 성장하고, 아드미르 메흐메디 등 경쟁자가 들어오면서 손흥민이 설 자리가 약해진 게 사실이다. 올 시즌 초반 2경기에서도 손흥민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교체 1순위로 물러났다. 레버쿠젠 구단도 새 축구 색깔과 백업 자원의 성장 속에 한창 주가가 오른 손흥민을 팔겠다는 의도가 보였다는 것이다. 팀의 간판스타인 손흥민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하다. 손 감독은 “에이전트는 토트넘이나 레버쿠젠 모두 눈치를 볼 수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부적합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이 30일(한국시간)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EPL 4라운드 에버턴과 경기가 끝난 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옆은 손흥민의 부친 송웅정씨. 런던 | 고건우통신원

손웅정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손(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이 4일 춘천 공지천 인조잔디구장에서 유소년 꿈나무를 지도하고 있다. 춘천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PL은 공격적인 축구, 아들과 딱 맞을 것

물론 토트넘에서만 구애를 받은 게 아니다. 그는 “공개할 수는 없지만 독일 내 타 팀에서도 흥민이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다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자체가 워낙 공격적으로 경기 운영을 하지 않는가”라며 “토트넘에서 비전은 있으리라고 봤다”고 했다. 토트넘은 개막 이후 4경기에서 3무1패의 부진이다. 골도 3골이 전부다. 전방 해리 케인은 무기력하다. 손흥민이 초반 맹활약하면 주전 경쟁은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손 감독은 “그건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에…”라며 말을 아꼈다. 늘 시즌을 마치면 아들과 춘천에서 땀을 흘린 손 감독. 최근 두 시즌은 아들에게 휴식을 주는 일이 잦았다. 운동법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이젠 관리가 더 중요하다. 최근 휴식기 때 대표팀 소집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고, 잘 쉬지 못했다”며 “프로에서 흥민이가 해야 할 역할을 고려해서 슛 훈련이나 기존에 해온 것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컨디션을) 고려하면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제2의 손흥민을 발굴하고자 애쓰는 아카데미 사업에도 큰 애정을 보였다. 현재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40여 명이 손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다. “사실상 사비를 들여가면서 운영하니 다 내 자식과 같다”며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게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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