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배영수. 삼성시절 파란 피의 에이스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두산에선 지난시즌 우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배영수는 한국프로야구에 굵은 획은 그은 인물이다. 현역시절 영광의 자리에서 빛났지만 힘든 순간도 많았다. 한쪽 팔을 우승과 바꿨다는 스토리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2005년과 2006년 삼성의 연속우승 후 수술대에 누웠는데, LA컬란조브 병원의 담당의는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인대는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회복기간을 길었고 재활은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3년 다승왕에 오르며 인간승리의 표본이 됐다. 그가 부활할 수 있었던 투혼과 용기, 그리고 동료애를 알 수 있는 미담이 있다.

지난 2003년 2월, 하와이 마우이 섬의 햇볕 좋은 어느 날이었다. 전훈중 휴식을 맞은 삼성 선수단은 와일루아 폭포로 단체여행을 떠났다. 그곳엔 10미터 낙차의 폭포아래 맑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영에 능숙한 선수들은 폭포수 아래 수심 깊은 곳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자맥질 했고 서툰 이들은 반대편 얕은 곳에서 발을 담그고 놀았다. 문제는 몇몇 선수들이 폭포 정상에서 다이빙 하며 소풍 분위기가 고조되자 물가의 맥주병 선수들도 덩달아 흥분하며 발생했다. 당시 2년차 투수 권혁도 어설픈 자유형으로 물가를 벗어난 뒤 컴백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아차,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는 몇 번 허우적거리더니 순식간에 물속에 잠겼다.

위험을 직감한 1년 선배 배영수가 가장 먼저 뛰어 들었다. 하지만 권혁은 본능적으로 구하러 온 그의 어깨를 꽉 잡아당겼다. 용감한 배영수였지만 야구만큼 수영을 잘하진 못했다. 다급히 몸을 빼는데 이번엔 권혁이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었으나 주변의 맥주병 선수들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간신히 물 밖으로 빠져나온 배영수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사이 권혁은 물속에서 널부러졌고 그제서야 동료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때 스포츠서울 이재국 기자(현 스포티비)가 몸을 던졌고 수심 3미터 물속에서 의식을 잃은 권혁을 뒤에서 감싸며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2~3m 전진했을까. 이 기자의 몸에서도 힘이 빠져나가며 움직임이 더뎌졌고 두 사람 모두 위험에 빠졌다.

그때 배영수가 다시 뛰어 들었다. 폭포아래에 있던 권오원도 가세했다. 이들은 권혁의 축 처진 몸을 나눠 잡고 다리가 바닥에 닿는 곳까지 혼신을 다해 자맥질 했다.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던 그 1~2분이 지나고 가까스로 그들은 무사히 호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흉부압박을 통해 권혁은 삼킨 물을 토해내며 다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배영수는 이날 두 번이나 물속에 뛰어 들었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소름끼치는 공포를 두 번이나 이겨냈다. 위기 상황에서 용기를 냈고 희망을 실천했다. 이젠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단편이다.

kenny@sportsseoul.com

영상편집 | 조윤형기자 yoonz@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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