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끝내기 역전패 KT, 한 이닝을 지키지 못하고...
KT 선수들이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LG와 KT의 경기 9회말 LG에 끝내기 안타를 내주며 역전패 당한 뒤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0. 5. 22. 잠실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야구는 매너의 경기일까. 그렇진 않다. 지난해 가을잔치에서 키움 송성문의 상대팀에 대한 도를 넘은 야유가 전파를 타며 매너 문제가 한바탕 도마위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며,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들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있다. 소속팀 선수들의 기를 살리는게 아닌 상대를 인간적으로 조롱하는 내용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

외국인 투수도 예외는 아니다. KT 윌리엄 쿠에바스는 마운드 위 기합소리가 큰 박상원을 수차례 손가락질 하며 ‘쉿’하는 동작을 보였다. 조롱 행위였다. 한화 한용덕 감독까지 나서 항의했고, 쿠에바스는 경기 후 사과했다. 박상원은 “굳이 사과할 내용이 아닌데 전화해줘서 고맙다”라고 마무리했다.

리그 최고참 사령탑인 LG 류중일 감독은 이미 개막전에 “같은 팀 선수를 격려하는 건 얼마든지 좋지만 상대 선수 이름을 외친다면 실례다. 절대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몸에 익었던 비매너가 한번에 사라지진 않는다.

매너는 행동양식이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바꾸면 몸가짐, 예의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야구는 본질적으로 매너보단 속임수에 가까운 종목이다. 야구는 마운드의 투수가 공을 던지며 시작하는 경기다. 투수는 빠른공과 변화구를 가지고 타자를 속인다. 그리고 강약과 코스변화로 상대를 농락한다.

타자는 투수보다 수동적이긴 하지만 번트앤드슬래쉬처럼 상황에 따라 꾀를 부린다. 빠른공에 미동을 하지 않아 변화구를 노리는 척 하면서, 빠른공을 기다리기도 한다. 최근 롯데 포수 정보근의 예처럼, 수비중에도 속임수는 나온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기 위해 원바운드를 노바운드라고 떳떳하게 말한다.

야구는 야유와 조롱의 경기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야구의 본고장인 메이저리그(ML)에서도 오래전부터 트래시 토크를 주고받으며 부딪힌 경우가 많다. 올시즌 무관중으로 개막하면 ML무대는 UFC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여지도 있다.

KBO리그처럼 앰프 응원도 없기에 상대 더그아웃의 소리가 전달되며 경기는 외적으로 뜨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이번시즌은 선수단 이동 최소화를 위해 지역 라이벌 매치가 많이 열리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야구에서 트래쉬 토크, 야유, 조롱은 승부의 순간 상대를 때리는 무기로 활용됐다. 도발하고 자극해 심기를 흔들었다. 그런데 KBO 리그는 무관중 경기과 일련의 일을 통해 야유문화의 변화와 마주하고 있다. 상대에 대한 조롱보다 동료를 응원하는 쪽으로 선회할 여지가 생겼다.

롯데 더그아웃에서 상대 마운드를 향해 “고라니 화났다. 울어울어”와 같은 말이 나왔지만, 동시에 “하지마 하지마”라고 제지한 전준우도 있었다.

KBO리그는 ESPN을 통해 130개국에 중계되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K방역에 힘입어 KBO리그도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야구는 잘 치고 달 던지는게 전부가 아니다. 리그의 수준을 결정하는 건, 경기외적인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kenny@sportsseoul.com

PS.

KBO리그는 그동안 경기 외적으로 오랜 기간 기억될 좋은 모습도 보였다. 지난 2015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패했다. 그런데 당시 삼성 사령탑인 류중일 감독은 선수단을 이끌고 그라운드에 도열했다. 그리고 우승에 기뻐하는 두산 선수단을 향해 한참동안 박수를 보냈다. 속이 쓰리고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지만, 류 감독은 시상식이 끝난 뒤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 직접 축하 악수까지 한 뒤 퇴장했다. 승리가 최우선인 프로의 세계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