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KBO 긴급 이사회, 회의 진행하는 정운찬 총재
21일 서울 오전 강남구 도곡동 캠코양재타워에서 열린 KBO 긴급 이사회에서 KBO 정운찬 총재(왼쪽)와 각 구단 대표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20. 4. 21.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144’라는 숫자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KBO는 144경기 완주를 목표로 내세웠다. 현장에선 무리라고 호소한다.

LG 류중일 감독이 먼저 총대를 멨다. “줄였으면 한다.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선수 자원이 적다.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를 하면 체력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고급스러운 야구를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 경기 질이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SK 염경엽 감독은 ‘득소대실’이라는 표현을 쓰며 “스포츠 산업이 성공하는 기본요소는 경기의 질이다. 왜 많은 팬들이 EPL을 보는가. 수준이 높으니 경기가 재미있다. 팬들은 양이 많은 음식점보다 맛있는 음식점을 선호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두산 김태형 감독도 거들었다. 그는 “팬을 위해 야구를 하지만 포기할 때가 늘어날 수 있다. 더블헤더에 승리조가 다 투입되면 다음 경기는 못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개막 연기가 한 달 이상 길어졌다. 그 부분을 감안해서 치르는 게 맞다고 본다. 중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라고 답답해 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좋은 전력으로 박빙승부를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팬들의 눈높이가 올라가 있는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면 흰수건을 던져야 한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다음 경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팬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허구연 MBC해설위원은 “144경기는 소탐대실”이라며 조금 멀리볼 것을 조언했다. 올해 여파가 내년시즌까지 미친다는 걱정이 담겨있다. 내년엔 WBC와 도쿄올림픽 등 국제경기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대표급 선수들의 정상 전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KBO도 현장의 목소리를 모를 리 없다. KBO이사회를 통해 5월 5일 개막과 144경기 체제 유지를 공표했지만, 내부적으론 경기축소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돌렸다.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장마,태풍,미세먼지도 위험요소다.

그렇다고 해서 KBO가 선제적으로 136경기나 128경기 체제로 공식 전환하긴 힘들다. 중계권, 광고권, 구단운영, 선수연봉 등이 기존 144경기를 기본으로 짜여져 있다. 때문에 기존체제로 시작하지만, 상황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수면 위아래의 온도차가 있다.

그래서 KBO 류대환 총장은 “경기 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변수가 많다. 이사회에서도 144경기를 다 치른다기 보다, 일단 이렇게 해놓고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줄여나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시즌 중 변수에 따른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것.

결국 144경기는 약속된 피니시 라인이 아니다. 저 멀리 놓여진 하나의 기준선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한정된 시간이다. 야구는 이닝으로 이뤄지는 게임이다. 축구나 농구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다투는 종목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특수한 상황이다. 11월 완주라는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다.

현장은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걸 본능적으로 느꼈고, 프로다움을 약속하기 힘들기에 목소리를 냈다. KBO의 입장도 분명하다. 리그전체를 지키기 위해 144경기를 수성하려 한다. 정답은 예단하기 힘들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납득할 부분이 있다.

어쩌면 144경기를 하고 말고는, 행복한 고민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정규리그 시작을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한국야구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KBO리그는 많은 주목을 받으며 144경기를 향한 행군에 나선다. 신작로는 아니다. 중간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과연 KBO와 10구단, 그리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위기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코로나19의 일격으로 사회 전분야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막막한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며 버티고 있다. 야구인들도 상생을 위해 고집을 내려놓았으면 한다. KBO리그는 때로 수준이하의 경기력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직면했을 때, 좋은 선례를 남기며 엄지세례를 받길 기대한다.

그게 144경기를 다 채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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