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투수들에게 바이블처럼 강조되는 금언이 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워렌 스팬의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Hitting is timing. Pitching is upsetting timing.)”이라는 문구다.

스팬은 왼손 투수로는 최다인 363승을 거두며 타자들을 압도했다. MLB는 스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9년부터 시즌 최고의 좌완에게 ‘워렌 스팬 어워드’를 시상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 회원인 랜디 존슨은 4년 연속,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도 4차례 상을 수상했다. 스포츠네트 LA의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는 오렐 허샤이저는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등판할 때마다 “스피드 조절과 좌우 플레이트를 이용하는 피칭이 뛰어나다. 그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라고 평가한다. 피칭의 완급조절로 타이밍을 빼앗는 스타일이다. 아울러 “그는 건강할 때 최고 투수의 기량을 보여준다”고 덧붙인다.

류현진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개막전에서 6이닝 동안 4안타만을 내주고 삼진 8개를 솎아내며 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빼어난 피칭으로 2019시즌을 상큼하게 스타트했다. 개막전에서 폭죽처럼 터진 기록적 홈런으로 선발 투수 류현진의 호투가 다소 빛이 바랬다. 홈런은 야구의 꽃이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한 발 앞섰던 리치 힐의 부상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에 낙점된 게 행운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릭 허니컷 투수코치는 시범경기부터 차근차근 시즌에 대비한 류현진에게 개막전 선발의 중책을 맡겼고 그는 기대에 걸맞는 호투로 홈팬들을 즐겁게 해줬다. 마운드의 리더 커쇼도 6회를 마치고 덕아웃에 돌아온 류현진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다저스 코칭스태프가 류현진에게 중책을 선뜻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9월부터 굴곡없는 피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에서도 6이닝 동안 단 한 개의 볼넷도 없었다. 시범경기를 포함해 21연속이닝 무4사구 행진이다. 류현진은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은 아니다. KBO 리그에서는 ‘괴물’로 불리우며 닥터K의 면모를 보였으나 MLB에서는 다르다. 오히려 ‘코리안 특급’으로 통했던 박찬호가 닥터K에 가까운 편이다. 한 시즌 탈삼진 200개 이상을 두 차례 일궈냈다. 류현진의 한 시즌 최다 삼진은 2013년 데뷔 시즌에 192이닝을 던지며 작성한 154개다.

빠른 볼은 투수의 최대 무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강속구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이영상 3차례 및 MVP를 수상한 커쇼의 무기도 결국 빠른 볼을 받쳐준 제구의 힘이다. 최근 구속이 떨어지면서 흔들리는 게 역력하다. 커쇼는 통산 2096.1이닝에 삼진 2275, 볼넷 536개를 기록중이다.

류현진의 최대 무기는 좌우 코너를 찌르는 보더라인 피칭과 완벽에 가까운 제구다. 지난해 9월 이후 제구의 힘은 두드러진다. 사타구니 부상에서 복귀한 직후 등판한 5경기중 3경기에서 볼넷이 없었다. 지난 시즌 15경기 등판에 7경기가 볼넷 없는 게임이었다. 방어율 1.97을 유지한 힘이다. 3구 삼진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개막전에서 8개의 삼진 가운데 3개가 3구 삼진이다. 류현진은 올 개막전을 포함해 통산 97경기 선발 등판에서 24경기에서 볼넷없는 게임을 치렀다. 오는 3일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도 볼넷없는 경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관전포인트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마운드에서 이점을 살릴 수 있다. 타자들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경기 진행도 빨라진다. ‘컨트롤의 마법사’로 통했던 그렉 매덕스가 그랬다. 볼넷을 남발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야수들의 실책도 많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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