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다저스타디움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LA 다저스-밀워키 브루어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지켜보면서 KBO리그를 주름잡았던 김성근 전 감독이 재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김 전 감독이 다저스-브루어스전을 차분하게 관전했다면 콧방귀를 뀔 법하다. 예전에 국내에서 비난받았던 좌우놀이, 벌떼 야구, 바람잡이 선발 등이 총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결정전은 전형적인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이다.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좌우놀이’에 거의 목을 맨다. 좌완이 등판하면 우타 라인, 우완 선발에는 좌타라인으로 오더를 짠다. MLB에서는 이를 ‘매치업’이라고 한다. 구원 투수 역시 곧바로 매치업을 한다. 매치업의 최대 희생자는 지난 8월 피츠버그에서 트레이드된 우타 1루수 데이비드 프리스다. 철저히 좌완만 상대한다. 챔피언십시리즈 5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딱 6차례 타석에 들어섰고 5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2차전에서 2타석을 소화한 것이 최다였고 4차전에는 1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뒤 2회 타석에서 곧바로 대타로 교체됐다.

로버츠의 좌우놀이가 이해되는 대목은 있다. 다저스 선수층이 그만큼 두껍다. 야수 전원이 선발로 출장해도 손색 없는 기량을 갖추고 있다. 긍적적으로 보게 되면 로버츠 감독은 선수가 갖고 있는 기량을 최대한 끌어 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선수들도 늘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점은 타격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맥이 끊긴다는 것이다. 또 감독 야구로 선수의 기량을 제한시키는 측면이 있다.

벌떼 야구는 두 팀이 유난히 심한 편이다. 물론 현재의 MLB 흐름이 불펜 야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불펜 야구는 경기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리는 주범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경기 스피드업에 노심초사하는데 감독들은 승리를 위해 이를 역행하고 있다. 젊은 팬들이 야구를 멀리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MLB는 농구 NBA와 미식축구 NFL와의 시청률 싸움에서 한참 뒤지고 있다. 5차전에서 브루어스는 바람잡이 선발 웨이드 마일리를 포함해 8회 동안 6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다저스는 선발 클레이턴 커쇼가 7이닝을 던지고 물러난 뒤 4명이 구원 등판했다.

브루어스 크레이그 카운셀 감독은 이번 시리즈에 앞서 기자회견 때 “우리는 정상적인 투수운용을 하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선발은 무늬 뿐이고 불펜 야구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선발 로테이션도 3인 체제다. 5차전은 올 포스트시즌의 하이라이트였다. 2차전에서 류현진과 맞붙은 좌완 웨이드 마일리가 3일 휴식 후 등판했다.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마일리는 톱타자 코디 벨린저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곧바로 교체됐다. 팬들은 어리둥절했다. 우완 브랜든 우드러프가 1회 2번 타자부터 다저스 타선을 상대했다. 마일리 등판은 한마디로 ‘바람잡이 선발’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좌우놀이가 주특기인 로버츠가 이를 간파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상대 선발이 좌완 마일리임에도 톱타자로 벨린저와 5번에 맥스 먼시 등 두 좌타자를 기용한 점은 로버츠답지 않은 선발 라인업이었다. MLB 감독 가운데 가장 매치업에 치중하는 그가 왜 갑자기 톱타자로 좌타자를 내세웠을까. 4차전에서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라서 벨린저를 톱타자로 기용했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로버츠는 전날 홈런에 맹타를 휘둘러도 매치업으로 좌완이 등판하면 좌타자를 빼는 스타일이다.

경기 전 로버츠는 인터뷰를 통해 카운셀의 바람잡이 선발을 눈치챈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두 감독이 수 싸움을 벌인 것이다. 기자들이 벨린저의 톱타자 기용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로버츠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벨린저가 마일리와 대결에서 괜찮았다”고 설명했다. 로버츠와 카운셀 감독은 매우 영리한 지도자로 손꼽힌다. 둘 모두 명문 UCLA와 노터데임 대학에서 역사와 회계학을 전공해 학위를 받았다. 5차전을 승리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한 다저스가 밀워키에서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할지, 카운셀 감독이 안방에서 반격을 펼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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