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스포츠에서 찬스에 강한 선수를 ‘클러치 플레이어(Clutch player)’로 부른다. 스포츠 사상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다. 시카고 불스에서 6차례 NBA 파이널에 진출해 모두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7년 유타 재즈와의 파이널 5차전에서 탈수와 극도의 피로가 쌓여 동료 스코티 피펜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양팀 통틀어 최다 38점을 성공하며 90-88 승리를 이끌어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NBA 결승전은 2-3-2 포맷으로 진행됐고 2승2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뤘던 터라 원정 5차전이 승부처였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승부처에서 클러치 퍼팅으로 PGA 투어 통산 79승을 달성했다. 홈런왕 행크 애런은 우즈의 클러치 퍼팅이 골프를 스포츠로 승화시켰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야구에서 클러치 능력은 2사 후, 7회 이후, 끝내기(walk-off)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는 지난 27일 캔자스시티전 연장 10회에 개인통산 3번째 끝내기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아시안 최다 홈런(176개) 기록을 수립했다. 끝내기 홈런은 5년 만이며 텍사스에 몸담은 뒤 처음으로 터뜨린 것이다. 텍사스에서는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는 없다.

동점 상황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끝내기 안타와 끝내기 홈런은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촉매제가 된다. 끝내기 안타가 많은 팀이 자연히 좋은 성적을 거둔다. 끝내기 적시타 후의 세리머니도 야구팬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가끔 과격한 세리머니가 탈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추신수
텍사스 추신수 강명호기자 kangmycall.sportsseoul.com

월드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은 수없이 많이 터졌고 그 한방으로 우승의 향배가 결정됐다. LA 다저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30년 전인 1988년이다. 당시 LA 다저스는 아메리칸리그 챔프 오클랜드 에이스에 절대 열세였다. 오클랜드는 에이스 데이브 스튜어트,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 공격에서는 마크 맥과이어-호세 칸세코의 ‘배시 브라더스’ 등 막강 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1차전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대타로 나선 커크 깁슨이 특급 마무리 에커슬리로부터 끝내기 2점 홈런을 뽑으면서 분위기는 다저스로 급격히 쏠렸고 4승1패로 막을 내렸다. 끝내기 홈런의 파워를 실감나게한 시리즈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월드시리즈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Do or Die) 게임’인 7차전 끝내기 홈런은 딱 한 차례 뿐이다. 1960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2루수 빌 매저로스키가 주인공이다. 뉴욕 양키스와의 7차전에서 9-9 동점을 이룬 9회말에 생애 최고의 홈런을 터뜨렸다. 매저로스키는 ML 17년 동안 타율 0.260에 138홈런, 853타점, 769득점을 기록한 수비수였다. 그런 그가 명예의 전당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 덕분이다. 한국시리즈에서도 2009년 기아 타이거스의 나지완이 SK로 상대로 터뜨린 끝내기 홈런이 7차전으로서는 유일하다.

MLB 사상 역대 최다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은 올해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된 좌타자 짐 토미다. 정규시즌 통산 13개의 끝내기 홈런을 터뜨려 베이브 루스, 미키 맨틀, 지미 폭스, 스탠 뮤지얼, 프랭크 로빈슨 등(12개) 전설의 강타자를 제치고 이 부문 선두를 지켰다. 모두 명예의 전당 회원들이다. 그러나 통산 612개의 아치를 그린 토미는 포스트시즌에서는 끝내기 홈런을 뽑지 못했다. 맨틀은 1963년 월드시리즈에서도 끝내기 포를 날렸다. 뮤지얼은 1955년 올스타게임에서 연장 12회 끝내기 홈런으로 내셔널리그에 승리를 안겼다. 올스타게임에서는 뮤지얼과 테드 윌리엄스, 조니 칼리슨 등 3명이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2016년 은퇴한 전 보스턴 레드삭스 데이비드 오티스도 찬스에 강했다. 정규시즌 11개의 끝내기 홈런을 날린 오티스는 2004년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끝내기 홈런을 터뜨려 최고의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다. 끝내기 홈런은 클러치의 끝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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