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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들 대령’ 포스터

[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영화의 시작과 끝은 매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씩씩하고 활기찬 행진곡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하지만 영화의 장면은 화려한 행진곡과는 달리 암울하기만 하다. 1993년에 만들어진 헝가리-독일 합작영화인 ‘레들 대령’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알프레드 레들(1864-1913)은 총명한 머리를 가졌지만 가난한 철도역무원의 아들이었다. 뛰어난 머리로 귀족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행운을 누린 레들은 졸업 후 정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도청과 지문 인식 등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을 정보 분야에 활용해 촉망받는 장교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부음에도 ‘나랏일이 먼저다’라며 고향으로 향하지 않은 그였지만 출세에 대한 뒤틀린 욕망 때문에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이다. 슬픔도, 애국도 아닌 출세에 대한 야망으로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동성애자였다. 그 당시 동성애는 죄악과도 같았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을 숨겨야했고, 동성간의 밀회는 지극히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다.

오스트리아 정보당국의 최고위직을 향해 달리던 그에게 러시아 스파이가 접근했다. 뒷조사를 통해 레들의 동성애를 간파한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레들에게 협박을 가했다. 자신의 지위를 조금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레들은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며 10여 년간 러시아 스파이로 암약했다. 하지만 그의 스파이 행각은 결국 탄로 나고 만다. 출세를 위해 전 생애를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채운 그였지만 마지막은 부하가 가져다준 권총으로 자살을 택하며 조금이나마 명예스럽게 죽었다.

그는 1913년에 사망했고, 인류사 최대의 비극중의 하나인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일어났다. 레들이 러시아에 넘긴 비밀문서 중 ‘플랜3’은 적대 국가였던 세르비아에 대한 공격 계획을 담고 있었다. 러시아로 넘어간 기밀문서에 오스트리아 정부당국은 당황했고, 이듬해 사라예보에서 일어났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의 암살사건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의 속셈을 플랜3를 통해 뻔히 알고 있던 러시아도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타올랐다.

영화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영화를 상징하듯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음악이 쓰이고 있다.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을 비롯해서 ‘왈츠의 왕’ 이라고 불린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제 왈츠’, ‘비엔나 기질’ 등이 영화 전편에 걸쳐 흐른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by various artists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제 왈츠’ by various artists

▶동성애 박해

- 알프레드 레들은 자신의 정체성인 동성애가 러시아 정보기관에 첩보되면서 반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언제부터 ‘죄’라는 개념을 동반하게 되었을까.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를 권장했다. 젊은 남자들은 전쟁에 차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동성애가 동료들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서양 철학의 비조인 소크라테스는 동성애는 완벽한 사랑이라고 찬양하기까지 했다. 여성 동성애를 뜻하는 ‘레즈비언’도 그리스 문명에서 나온 것을 보면 고대는 동성애에 관대했다.

우리 역사에도 동성애를 엿볼 수 있다. 젊고 잘 생긴 귀족자제들로 구성된 신라의 화랑은 동성애를 즐긴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조인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 쌍화점도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동성애를 다룬 영화다.

동성애에 대한 탄압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본격화됐다. 엄격한 기독교 윤리 앞에 동성애는 배척당했다. 4세기경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성애를 규탄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범주에 자리 잡게 되었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동성애를 하다 발각되면 화형에 처하는 법령을 만들기도 했다.

동양도 7세기경 당나라에 기독교 사상이 전파되면서 배척되는 분위기가 우세해졌다. 이전에 중국황제는 남첩을 둘 정도로 관용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동성애는 인간의 정체성중의 하나로 간주되면서 받아들여지게 됐다. 생리학자들은 인류의 3% 정도가 동성애 기질을 타고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요셉 라데츠키(Joseph Radetzky, 1766-1858)

: 오스트리아의 군인이다.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영화를 대표하는 군인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도 여러 번 참가해 용맹을 떨쳤다. 1836년에는 원수로 승진해 롬바르디아ㆍ베네치아 왕국의 총독이 되는 등 정치에도 수완을 발휘했다. 자국의 번영과 안정에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운동을 분쇄하는 데 앞장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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