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손실배상이 본격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우리은행이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자율 배상에 나서기로 하면서, 이를 기조로 은행권도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손실 관련 자율 배상 방침을 확정한다.

앞서 은행들은 우리은행의 배상 시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리은행의 ELS 판매규모는 400억원으로, 시중 은행 중 판매 및 손실 규모가 가장 적다. 상대적으로 판매금액이 적어 금감원의 검사대상에서도 제외됐던 우리은행의 ‘선방’은 결국 손실배상 물꼬를 텄다.

문제는 손실 규모가 큰 다른 은행들이다. 우리은행처럼 선제적 손실배상에 나서 ELS사태를 떨쳐내고 싶어도 ‘조 단위’ 규모의 판매금액이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ELS 판매규모는 판매사별로 △KB국민은행 8조1200억원 △하나은행 2조700억원 △신한은행 2조3600억원 △NH농협은행 2조600억원 △SC제일은행 1조2400억원 등이다.

◇ ELS 배상안,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듯…‘전액 보상’ 요구하는 피해 투자자들

KB·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은 이번 주 잇따라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H지수 ELS 손실 자율 배상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배상기준안에 따라 20~53%(기본배상) 바탕으로, 각 은행이 추정한 배상 규모 등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금감원 분조위 결과를 최종 확인한 뒤 자율배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최대 관심은 홍콩 ELS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이다. 앞서 지난 1월 금융감독원은 최대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현장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또 지난 13일부터 KB국민은행은 2021년 1∼7월(H지수 최고점 전후 기간) 판매한 H지수 ELS 계좌 8만여개에 대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금융 당국이 지적한 불완전 판매 기준에 실제로 얼마나 해당하는지 살펴 대략의 배상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이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된 이 전수조사가 이번 주 초중반 마무리되는 대로, 이사회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자율 배상을 논의한 뒤 의결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민은행의 판매금액은 8조원이 넘어 사례별로 배상 비율, 액수를 따지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은행 투자 피해자들의 불만도 커질 우려가 있다”라고 짚었다.

하나은행 역시 27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안을 논의한다. 하나은행은 이사회 심의와 결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자율배상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손님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도 28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배상안을 확정할 것이 유력하다.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각각 지난해 9월과 8월 ELS TF를 꾸려 이번 사태에 대응해왔다.

신한은행도 이번 주에 이사회를 열고 ELS 자율 배상을 공식 확정한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6월부터 H지수 ELS 사후 관리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현재 17명으로 구성된 이 TF가 자율 배상 관련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거의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은행권이 3월 안에 이사회 자율 배상 여부를 매듭짓기 위해 서두르는 것은 지속해 관련 손실, 배상액에 따라 매번 이사회를 열어 승인받고 배상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배상액 추정치를 최대한 1분기 실적에 충당금 등으로 반영한 뒤 향후 가감하는 방식을 택해 3월 말까지는 이사회 결의를 마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당국의 압박과 은행권의 일사불란한 후속 조치가 다음 달 10일 국회의원 선거 등 정치 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각 은행의 이사회 승인이 마무리되면, 은행권은 일제히 다음 달부터 개별 투자자들과 실제 배상 비율 관련 협의를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이미 손실이 확정된 고객이 있어, 최초 배상 확정 사례를 낼 수도 있다.

은행권의 정부 배상안 수용과 배상 절차 돌입이 임박하면서, 각 은행이 추정하는 배상 규모의 윤곽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다만 투자 피해자들이 ‘전액 보상’을 요구하는 만큼, 긴 시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gyuri@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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