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태형 기자] “마지막 회는 숙소를 잡고 조카들 불러서 같이 봤어요.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지난 1년간 고생하며 연기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었어요. 여운이 많이 남아요. 빨리 보내야 하는데 말이죠.”

‘명품 조연’ 김준배에게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출연은 그의 연기인생에 가장 큰 수확이자 행운이었다.

김준배는 디즈니+ ‘카지노 시즌2’(2023), MBC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2017) 등 다양한 작품에서 장시간 활동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드라마 속 캐릭터보다 악역 이미지가 강했다. 덕분에 지난 2022년에는 악역 전문 조연배우들을 조명한 MBC 예능 프로그램 ‘악카펠라’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종영한 ‘고려거란전쟁’에서는 강감찬(최수종 분)과 대척점에 선 거란의 명장 소배압역으로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김준배는 “마트에 가면 ‘소배압 장군 오셨다’며 알아봐주신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알을 깨고 나오게 한 작품이죠. 이제 좀 세상에 날개를 펴고 나온 듯해요. 큰 세상에 나와서 다양한 인물을 만날 준비가 됐다는 느낌이죠.”

처음 ‘고려거란전쟁’에 캐스팅될 때만 해도 자신이 소배압 역을 맡을 줄 몰랐다. 전우성PD는 김준배에게 “오랑캐가 아닌 고려 장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종 형님 캐스팅되고 얼마 안 돼서 전화가 왔어요. 근데 오랑캐더라고요. 하지만 ‘같은 오랑캐라도 다르다. 명재상이자 최고사령관이고, 노장인 캐릭터다’라는 설명에 더 흥미를 느꼈어요. 이면들이 많을 것 같더라고요. PD님도 이렇게 큰 역할이란 건 얘기 안 해주셨어요.”

소배압을 연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역사가 말해주지 않은 소배압의 나머지 모습은 김준배가 연기를 통해 채워야 할 부분이었다. 흉내조차 어려운 몽골어 발음을 익혔고 두터운 분장은 물론 20KG짜리 갑옷으로 무장했다.

“소배압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부하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평소에 어떻게 걷고 웃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유목민들을 다룬 다큐를 보며 힌트를 얻으려고 했죠. 실제 소배압은 덕장이자 명재상이라고 들었어요. 고려에 오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야전에서 닳고 닳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외의 것들은 제가 채워야 할 부분이었죠.”

깊은 고민 끝에 김준배는 전장을 꿰뚫어 보는 식견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소배압을 탄생시켰다. 야율융서(김혁 분)와 함께 호시탐탐 고려를 넘보지만 끝내 좌절하는, 매력적인 악역이다. 악역 전문으로 명성을 떨친 김준배지만 소배압은 대하사극의 매력적인 악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평소에 제가 끄집어낼 수 없는 부분인데 악역을 통해 쾌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감정에 깊이 젖어들면 사람이 피폐해지겠죠. 악역은 오래 하고 싶진 않아요. 악역 연기 뒤 다음 작품에서는 선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기도 해요.”

‘고려거란전쟁’은 종영 뒤 제작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10일 방송된 최종회에서 ‘귀주대첩’이 어이없게 끝나면서 이같은 잡음이 불거졌다.

김준배는 전투 과정이 생략된 귀주대첩 장면에는 “좀 덜 찍은 부분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잘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다. 공동 연출인 전우성 PD와 김한솔 PD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는 의혹에는 “두 분의 인격을 알면 그런 소리는 안 나올 것”이라며 “너무 기대치가 커서 뭐라 하는 것 아닐까”라고 답했다.

김준배는 1년동안 ‘고려거란전쟁’을 함께 한 강감찬 역의 최수종에게 공개적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최수종보다 7살 연하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수종 형님과 연기할 때 흥미진진했어요. 시너지가 생기면 다른 모습과 감정이 나오죠. 냉정한 느낌이 있지만 소탈한 형님이죠.”

‘고려거란전쟁’을 마친 김준배의 꿈은 중년멜로물 촬영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이 아닌, 짝사랑하는 순정남을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동네 아저씨가 혼자 사는 아줌마를 몰래 짝사랑하고 챙겨주는 중년 바보 멜로요. 중년인데 연애에 있어서는 서툰 바보같은 인물이죠.(웃음)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여배우가 마음속에 있긴 한데 말을 못하겠어요. 깊은 사랑에 대해 아는 분들, 삶에 부대끼면서도 내면에 사랑이 느껴지는 그런 여배우들과 해보고 싶어요.” tha9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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