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유약한 이미지다. 앙상한 체형에 앳된 얼굴과 목소리,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화법이 어딘가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래서일까, 최우식만큼 20대 ‘편돌이’(편의점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일컫는 신조어)와 어울리는 배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위에서 흔히 볼 법한 인상의 최우식이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에서 연쇄살인마 이탕으로 변모했다. 그간 보여준 적 없는 카리스마가 온몸에서 드러났다.

이탕이 죽이는 인간들은 ‘죽어 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삶을 살아온 자들이다. 본능인지, 촉인지, 확신인지 알 수 없는 경계에서 완벽히 살인을 저지른다. 최우식은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적 복수와 공적 처벌이 화두가 된 시대에 색다른 형태의 다크히어로를 탄생시켰다.

최우식은 “이탕은 만화에서 탄생한 인물이다.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 사건·사고를 통해 겪은 심경 변화를 과장하지 않고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인은 나빠요”

‘살인자ㅇ난감’은 창의적인 연출 기법이 다양하게 사용된 작품이다. 못을 박았는데 피가 튄다던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배경이 화사해지면서 느린 화면을 보여주거나, 갑자기 환영이 실제처럼 나타나는 장면 등이다. 만화의 정서를 대거 끌어와 생경할 수 있는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은 인물이 이탕이다.

“그 어떤 작품에 비해 감독님에게 많은 질문을 했어요. 이탕과 송촌(이희준 분)의 차이점도 많이 생각했고요. 저는 연기할 때 ‘내가 그 캐릭터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상상하곤 해요. 성장하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적 없는 극단적 설정이 많았지만, 근거없는 자신감이 샘 솟아 출연을 선택했어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대체로 착한 면만 보여줬던 최우식은 ‘살인자ㅇ난감’ 후반부엔 강인함을 그려낸다. 특히 “살인이 참 어렵죠”라고 자조적인 대사를 던지는 대목에선 오히려 강력한 남성성이 느껴진다. 이전에 없던 카리스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살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카리스마가 생기지 않을까요. 수산물 시장에서 일하는 이탕은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벼랑 끝에 몰린 이탕이 나아가는 길은 나쁜 사람들을 죽이는 것 밖에 없다고 여겼죠.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거친 면이 나오잖아요. 그 점이 두드러진 것 같아요.”

‘살인자ㅇ난감’의 핵심적인 질문은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사적으로 죽여도 되는가”이다. 사적 복수를 통한 처벌이 맞는지, 어떻게든 사회가 만든 규칙 내에서 처벌하는 것이 올바른지 묻는다. 이탕을 연기한 최우식도 오랫동안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인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탕도 자살을 시도하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괴로워하죠. 살인에 대해 합리화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면, 일차원적인 느낌을 줬을 것 같아요. 올바르지 않다고 여기면서 연기했어요.”

◇“아직도 봉준호가 목마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베드신이다. 의외의 포인트에서 여배우가 노출한다. 격정적이거나 애정이 가득한 베드신도 아니다. 이탕은 딴생각에 잠겨있다. 그러다 또 환상에 빠진다. 최우식 연기 인생에 첫 베드신이기도 하다.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에요. 그런 분위기의 연기는 처음이어서 많이 긴장했어요. 판타지 요소도 많잖아요. 이탕이 뭘 하는 건지, 집중은 하는 건지, 그 애매함을 표현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베드신 말고도 신선한 장면이 많아요. 갑자기 네 발로 뛰거나, 엄마 심부름을 하다가 죽였던 사람 얼굴을 보는 장면도 특별했죠. 감정선을 뛰어넘는 판타지는 처음이었어요.”

최우식과 영화 ‘옥자’(2017)와 ‘기생충’(2020)을 함께 한 봉준호 감독은 그를 유독 아낀다. 함께 한 현장에서 최우식을 바라보는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귀여운 동생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 봉 감독은 ‘살인자ㅇ난감’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지 않았다.

“솔직히 얘기하면 봉 감독님의 감상평을 당연히 기다리고 있어요. 바쁘시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데, 기다리고 있어요. ‘살인자ㅇ난감’에서 그간 보지 못한 제 얼굴이 있어요.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더 숙제가 될 것 같아요. 이런 느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게 맞는지 아닌지요. 전 아직 더 성장이 필요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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