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암벽 등반, 즉 클라이밍에 빠져 지냈다. 단체 모임이 철저히 금지된 만큼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운동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에 있는 실내 클라이밍장(암장)을 찾아낸 것이다. 뭔가에 집중하면 온전히 몰두해 파고드는 성격상 거의 1년 동안 매일 암장을 찾아 벽을 올랐다.

“매일 오면 근육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며 코치분들께서 걱정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새로운 코스에 도전했고, 레벨이 오를 때마다 큰 희열을 느꼈다. 이제는 팬데믹도 끝났고 다시 생업이 바빠지며 암장에는 거의 가지 못하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운동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클라이밍을 항상 목록에 포함시킨다.

필자가 한 클라이밍 종목은 볼더링이라는 것이다. 볼더링은 큰 바위 혹은 암벽을 어떠한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오르는 것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스포츠로 실내 암장에는 보통 5미터 정도 높이의 벽에 홀더가 다양하게 박혀 있다. 플레이어는 이 홀더를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디면서 벽을 올라 정상의 마지막 홀드를 붙잡으며 코스를 정복하게 된다.

이런 볼더링의 첫번째 매력은 코스가 길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최강이었던 김자인 선수의 주종목이었던 ‘리드’는 긴 줄을 허리에 매달고 15미터의 암벽을 오르는 경기다. 정상에 오르기만 해도 우승이 결정되어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길고,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난이도와 제약 등이 많은 종목이다.

그에 비해 볼더링은 필자 같은 초보자가 1분 내외로 성공할 수 있는 정도의 높이를 기준으로, 보다 다채로운 코스와 난이도로 구분돼 있어 빠른 성취감과 함께 부족한 부분을 빨리 파악하고 연습할 수 있다.

두번째 매력은 같은 코스라도 열 명이 도전하면 그 열 명이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오른다는 점이다. 사람은 모두 신체 조건이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딱 적당한 홀더 간의 너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다. 필자가 한 번에 손이 닿기에는 조금 먼 홀더가 있었다. 그래서 손과 발로 홀더를 단단히 잡고 디딘 것을 확인한 뒤 점프를 해서 목표 홀더를 잡고 흔들리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 다른 홀더들을 잡고 디뎠다.

필자가 그 코스를 완등하고 나서 필자보다 15cm 정도 키가 작은 여성분이 같은 코스에 도전했다. ‘저 넓은 너비의 홀더를 어떻게 잡을까?’라며 보고 있는데, 이 여성분은 유연성을 발휘해 필자가 점프 추진력을 위해 손으로 단단히 잡았던 홀더에 발을 걸고 부드럽게 일어서며 올랐고 아주 쉽게 팔을 뻗어 목표 홀더를 잡아냈다. 이처럼 클라이밍은 자신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며 또 배양해낸다.

볼더링의 세번째 매력은 본인이 믿고 있던 자신의 장점만 내세우다가는 어느 순간 벽을 만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늘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던 만큼 근력, 특히 상체 근력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볼더링을 처음 배웠을 때도 초보 난이도 코스들을 순식간에 정복해 나아갔다. 홀더가 제대로 잡히기만 하면 힘으로 몸을 끌어올리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점들이 어느 순간 독이 되기 시작했다. 코스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홀더는 잡기 힘든 형태가 되어갔고, 발을 제대로 딛지 않으면, 또 유연성이 좋지 않으면 코스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 하고 갇히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당연히 초보 코스에서 이런 부분들이 충분히 연습되었어야 하지만, 필자는 상체 근력만 믿고 발딛음과 유연성을 등한시했던 것이다.

이렇게 중간에 갇히면 정말 꼼짝도 못 한다. 매트를 믿고 아래로 그냥 떨어지면 되지 않냐고들 생각하는데, 매달려 있는 자세가 불안정하다보니 그대로 떨어지면 다칠 수 있다는 걸 머리로 알고 몸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떨어질 수도 없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한 뒤로 필자는 다시 초보 코스로 가서 발딛음과 유연성 훈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간낭비를 한 셈이다.

이 밖에도 매력이 많지만, 이 세가지만 봐도 클라이밍과 호신술(무술) 훈련은 꽤나 많이 닮았다. 호신술 역시 다양한 위험 상황에서 최단 시간에 나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집중하며, 연습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개개인의 신체 조건이 모두 다른 만큼 같은 위험 상황이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모두 다를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점은 특정 기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빨리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과신은 언젠가 큰 벽을 만나 좌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초를 탄탄히 만들 필요가 있다. 탄탄한 기초는 미처 상상조차 못 했던 큰 위협이 다가와도 몸이 먼저 반응해 활로를 찾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러고보면 삶을 살아가는 것도 똑같다. 너무 먼 목표만 바라보기 보다는 작은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뤄나가며 자신감을 쌓고 큰 성공의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고, 성공으로 가는 길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길을 어떤 방식으로 가는지도 모두 다르다.

따라서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그 길을 그대로 좇아갈 필요도 없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살다보면 나 자신을 남들보다 돋보이게 만들었던 장점이 내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의 대비를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기반을 잘 닦아놓고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점검해가며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할 듯하다.

이 정도 깨달음을 준다면, 클라이밍이, 그리고 호신술이 요즘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자기계발서들 못지않을 것 같다.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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