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유기징역형으로는 최장기 형량이 선고됐다. 지난 5월 대구에서 발생한 일명 ‘대구판 돌려차기 사건’을 일으킨 20대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당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배달기사로 위장한 피고인은 20대 여성이 집에 들어가려던 찰나 달려들어 방에 침입한 뒤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팔에 큰 상처를 낸 범인은 비명을 듣고 뛰어들어온 여성의 남자친구를 향해서도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중태에 빠지게 했다.

피해를 당한 남성은 큰 수술 후 40여 일 만에 깨어났지만, 뇌 등에 영구적 손상을 입어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겨우 20대의 어린 나이에 자신과 동일한 20대 남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린 셈이다.

범행이 굉장히 잔혹했고, 또 징역 50년이라는, 쉽게 보지 못하는 형량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 필자가 지도하는 수련생들 역시 서로의 생각을 밝혔다. 아무래도 호신술로써 무술을 배우고 있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분들이 많아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범인에게 50년이 아니라 100년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해도 그게 피해를 당한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것이 가장 큰 의견이었다.

“두 피해자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정도로 큰 외상을 입었고, 죽음의 공포를 겪은 경험 역시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인생이 망가졌고 그 가족들의 삶 역시 부서졌다”며 “그에 준하는 고통을 범인에게 줄 수 있는 형벌이 주어져야 한다. 그저 오래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처벌은 함무라비 법전이 통용되던 시절에나 있을 법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성폭행을 준비하고, 계획이 틀어지자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에게 지금 시대의 법은 충분한 벌을 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벌이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을까.

이후 이어진 이야기의 주제는 ‘자기방어에 대한 허용 기준’이었다. 필자가 칼럼을 통해서도 여러번 밝혔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무술 또는 호신술을 배웠다 할지라도 위협을 받을 때 배운 기술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많다.

방어하는 도중 위협을 가하던 상대방이 더 큰 부상을 당했을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고, 치료비 등을 빌미로 소송까지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에 대한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호신술 같은 거 필요없다.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면 그냥 빨리 뛰어서 그곳을 벗어나는게 최고”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먼저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휘두르는 흉기를 도대체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나. 나에게도 그에 준하는 무기가 있어야 상대가 잠시 주춤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무슨 기술을 쓰던가,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는 의견부터 나왔다.

이 역시 ‘눈에는 눈’이라는 식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다. 총기가 허용된 주가 있는 미국이라 해서 강력범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동일하게 흉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잃을 것 없는 이가 뒤를 생각하지 않고 휘두르는 것과, 지킬 것이 많은 입장에서 미래를 생각하며 휘두르는 것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실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 한은 가해자쪽이 훨씬 유리한 입장인 경우가 많다.

두번째 의견은 첫 번째만큼 과격하지는 않지만, 변화는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똑같이 무기를 들고 상대하지는 않더라도, 처음 위협을 가한 쪽이 어느 쪽인지 확실하다면 방어하는 입장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도 되도록 법적인 허용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것. 이는 상황 종료 후 발생할 수 있는 민사소송 등 법적인 공방에서도 먼저 위협을 가한 쪽이 철저하게 불리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 역시 ‘눈에는 눈’이라는 식이긴 하다. 하지만, ‘적극적인 대응’에 대한 기준을 훨씬 더 세밀하게 그리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필자 역시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국민들 대다수가 범죄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방어를 할 수 있고, 범인들 역시 자신들의 뜻대로 범행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것을 알면, 범죄 발생 수도 줄어들지 않을까. 마치 우리나라가 국방력을 꾸준히 높게 유지함으로써 북한의 침략을 아예 방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2023년 올 한 해만 해도 국민들은 ‘묻지마 폭행’, ‘묻지마 칼부림’ 등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함무라비 법전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애초에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법률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