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나도 한국인이고, 팬 입장이 이해된다. 다만 감독께서도 생각이 있을 것.”

축구국가대표팀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지도력을 떠나 근태 논란에 휩싸이며 대중적 신뢰를 잃은 수장 얘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민한 질문이었던 만큼 논리정연하게 답하기 어려웠는데, 대표팀 리더로 전례 없는 감독 외부 이슈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손흥민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간) 웨일스 원정 경기(0-0 무) 직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본지를 비롯한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2월 취임 이후 잦은 외유와 근태 논란에 휩싸인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축구대표팀 감독 얘기에 “대표팀을 오랜 기간 해온 사람으로 팬 입장은 분명히 이해된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이라며 “감독이 무조건 옳다는 것도 아니고, 팬이 무조건 옳다는 것도 아니다. 축구는 계속 변한다. (감독께서 해외 생활을 통해) 현대 축구를 한국 축구에 어떻게 입힐지 공부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나도 분명히 축구 팬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감독께서 분명히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흥민은 클린스만 감독 행동에 커다란 충격과 상처를 받은 축구 팬이 혹여 마음을 다칠 것을 우려했는지, ‘공감한다’는 어조의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또 대표팀의 주장으로 감독을 향해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를 남기는 발언도 빼놓지 않았다.

반대로 바라보면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어깨가 무거운 손흥민에게 부담이 더 커진 셈이다. 당장 13일 오전 1시30분 영국 뉴캐슬에서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9월 A매치 두 번째 경기는 클린스만호의 단두대 매치처럼 흐르고 있다.

지난 2월 취임한 클린스만 감독은 이제까지 5경기를 치렀는데 3무2패를 기록, 아직 한국 사령탑 데뷔승을 얻지 못했다. 역대 외인 사령탑 중 5경기 동안 승리가 없는 건 클린스만 감독이 처음이다. 손흥민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재성(마인츠) 등 역대 가장 많은 빅리거를 품고도 ‘무색·무취’ 전술로 일관하고 있다.

초기 성적에 관해서 국내 여론은 이전보다 인내하는 편이다. 전임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현 아랍에미리트(UAE)대표팀 감독도 초반 주요 경기, 대회에서 부진했으나 한국과 4년 동행 끝에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성적을 냈다. 다만 벤투 감독은 부임 초부터 ‘후방 빌드업’이라는 명확한 색깔이 있었고 4년간 완성도를 높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 축구’만 외칠 뿐 뚜렷한 색깔을 펼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손흥민의 유효슛 1개’가 전부였던 웨일스전 직후 그는 ‘어떠한 축구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어린 선수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는 등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경기력을 떠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건 업무 태도.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 7개월 동안 국내에 머문 건 2개월이 안 된다. 자택이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을 오가며 대표팀 업무와 관계없는 방송 출연 등으로 뭇매를 맞았다. 대표팀 주요 뼈대를 차지하는 K리거 또는 아시아 리그 소속 선수가 외면받는다는 시선이 따랐다. 오죽하면 ‘K리거는 차두리 코치 눈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나돈다.

‘클린스만 리스크’는 대표팀 구성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장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어드바이저로 돕다가 코치진에 합류한 차두리 코치가 방패막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따른다. 또 전술 부재 속에서 손흥민은 감독 지시에 따라 웨일스전에서도 ‘공격 프리롤’ 구실을 했다. 명확한 부분 전술보다 그의 개인 전술에 기댄 것인데, 그라운드 안팎에서 너무나 큰 짐을 지고 있다.

웨일스전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시차 없는 유럽파와 컨디션이 좋은 K리거의 역량을 끄집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집 전 벨기에리그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홍현석(헨트)을 주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측면에 두고, 멀티 수비 자원인 이순민(광주)을 후반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 자리로 전진 배치하는 등 변칙적으로 기용했는데 효력이 없었다. 포백 수비 선발 요원으로 나선 이기제(수원 삼성), 정승현(울산 현대)도 요즘 리그에서 부진했는데, 웨일스전에서 여파가 드러났다.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기용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따르는 이유다.

웨일스전에서는 각각 이적 문제, 주전 경쟁에서 밀려 임대 이적하느라 최근 실전 경기를 뛰지 못한 황인범과 황의조(노리치시티)도 뛰었다. 황인범은 경기 직후 “(경기 뛸 땐) 나처럼 오랜 기간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어려움이 있다”며 스스로 정상이 아님을 인정했다.

한 원로 축구인은 “선수들이 의식하지 않아 보여도 감독 외부 이슈에 영향을 받는다. 지근거리에서 선수, (K리그) 감독과 소통하지 않다보니 이전 벤투호처럼 끈끈함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지도자는 “경기를 보면 기존 주력 요원의 컨디션, 쓰임새를 면밀하게 체크해서 내보내는지 물음표가 있긴 하다. 또 부임 초반 (한국 축구계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건 장기적으로 커다란 리스크가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A매치 기간인 10일 런던에서 예정된 첼시-바이에른 뮌헨 레전드 매치 참가를 고려했다가 취소하는 등 여전히 ‘공감 상실 행보’를 지속했다. 같은 날 ‘라이벌’ 일본 축구는 독일 원정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지난해 월드컵 16강 이후 진일보한 성장을 증명했다. 자연스럽게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정체된 한국 축구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진다. 무엇보다 감독 리스크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어서 ‘조기 경질’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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