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2013년 7월 5일이었다. 만나면 징하게 싸웠던 LG와 넥센, 넥센과 LG의 목동 구장 경기는 이날도 접전이었다. 대기록 속에서 난타전이 펼쳐졌다. 대기록 주인공은 향후 영구결번이 되는 LG 이병규. 이병규는 7회 3루타로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했고 LG가 승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LG와 이병규 모두 웃지 못했다. 이병규의 4타수 4안타 5타점 활약에도 LG는 8회말 넥센에 5점을 허용하며 승기를 빼앗겼다. 역전패 결과만큼 과정도 좋지 못했다. 5점을 내주는 과정에서 사이클링 히트만큼 보기 드문 삼중도루가 나왔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8회말 1사 만루. LG 투수는 마무리 봉중근. 넥센 타자는 김지수였다. 당시 넥센 사령탑인 염경엽 감독은 봉중근이 주자 견제에 능한 것을 역이용했다. 일부러 2루 주자 강정호의 리드폭을 넓혔고 봉중근이 2루 견제구를 던지는 순간 3루 주자 유재신의 홈 스틸을 지시했다.

작전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붕중근의 2루 송구를 받은 손주인이 2루 주자 강정호를 신경 쓰는 사이 3루 주자 유재신이 홈을 파고들었다. 유재신 홈 세이프부터 2루 주자 강정호 3루 세이프, 1루 주자 김민성 2루 세이프까지 삼중도루가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 도루로 넥센이 10-9 리드를 잡았다. 최종 스코어는 12-10 넥센 승리였다. 주말 3연전 첫 경기에서 끔찍한 패배를 당한 LG는 다음 2경기도 지면서 스윕패를 당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10년 후인 2023년. LG 유니폼을 입은 염경엽 감독은 당시 넥센에서 LG를 상대로 펼친 것과 유사한 작전을 삼성을 상대로 시행했다. 지난 4일 대구 삼성전 8회초 2사 2, 3루. 2루 주자 오지환에게 리드폭을 크게 하도록 지시했다.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는 순간 3루 주자 정주현이 홈스틸해 추가점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2013년 7월 5일의 LG가 아니었다. 투수 김태훈과 포수 강민호, 그리고 유격수 이재현이 LG의 작전을 간파해 완벽하게 미끼를 던졌다. 2루 주자 오지환이 리드폭을 넓힌 순간, 유격수 이재현은 2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다. 김태훈은 2루 송구 모션을 취했고 그 순간 3루 주자 정주현이 홈을 향했는데 김태훈의 2루 송구는 페이크였다. 김태훈은 2루 견제구가 아닌 홈 견제구를 던졌고 정주현은 3루와 홈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8회초 김현수의 솔로포로 4-3으로 리드한 LG는 작전으로 뽑으려던 추가점에 실패했다. 경기 흐름이 묘하게 흘러갔고 삼성은 8회말 2점을 올려 5-4로 승리했다. LG 8연승이 작전 실패, 그리고 꾸준히 호투하던 유영찬이 강민호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무산됐다.

흥미로운 점은 참 많은 이들이 10년 전 목동과 이날 대구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 넥센 감독이었던 염경엽 감독이 LG 지휘봉을 잡고 있는 것은 물론, 사이클링 히트의 주인공 이병규는 삼성에서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10년 전 LG 2루수였던 손주인은 현재 삼성 수비 코치다. LG 유격수였던 오지환은 여전히 LG 유격수로 활약 중이다.

염경엽 감독, 이병규 수석 코치, 손주인 수비코치, 오지환까지 네 명은 아마도 10년 전 삼중도루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음에도 최초로 팀 패배를 경험한 이 수석 코치. 상대 작전에 당했던 손주인 수비 코치에게는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기억일 수 있다.

삼성이 LG의 작전을 간파한 것은 이 수석 코치와 손 수비 코치의 지워지지 않는 10년 전 기억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삼성 선수들은 10년 전 LG 이병규 주장의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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