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뜨거웠던 청춘에 대한 기록이다.

섭씨 36도까지 올라갔던 뜨거운 날씨만큼 누군가의 심장도 뜨거웠다. 누군가는 이들을 아마추어 동호인이라 부를 지라도 명색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대회에 나간 국가대표였다.

“애국가를 들으면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게 있어요. 특히 ‘대한 사람 대한으로’에서 눈물이 나요.” 선수들은 국가대항전에서 모자를 벗어 가슴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고 승리를 다짐했다. 투수 이지숙은 ‘오늘 꼭 이겨 여자야구 꿈나무들이 좋은 환경에서 야구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선수들은 제구가 안 되는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아 온몸에 멍이 들었다. 공을 맞은 날 저녁 외야수 안수지의 다리엔 시퍼런 멍 자국이 생겼다. “야구를 하면 멍이 안 들 날이 없겠네요?” “네 맞아요.” 안수지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안수지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1번 타자로서 출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벚꽃이 한창 피던 지난 3월 말, 선수들은 벚꽃 구경 대신 야구장에 모여 하루 종일 훈련을 받았다. 누군가가 그랬다. “벚꽃보다 야구를 더 사랑한 죄죠.” 이들은 그렇게 석 달간 주말을 반납하고 국제대회를 준비했다. 포수이자 주장 최민희는 “대표팀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곳”이라고 했다. 훈련으로 인해 생때같은 어린 딸을 집에 두고 와야 했다.

직장인 국가대표들은 ‘연차’를 쓰고 지난 5월 말 ‘2023년 아시안컵(BFA)’이 열린 홍콩으로 향했다. 고등학생·대학생 선수들은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나섰다. 포수 이빛나는 좋아하는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직업도 바꿨다.

“나이 40살 먹어서 눈물이 나네요.” 대표팀 이동현 투수 코치는 선수단의 투혼에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근우 야수 코치와 허일상 배터리 코치는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필리핀전 승리로 ‘세계야구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하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 허일상 코치는 “여자야구 선수들이 돈 받고 야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잖나. 야구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다. 필리핀에 져 세계대회 티켓을 획득하지 못하면 여자야구 발전에 걸림돌이 될까 경기 전 선수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필리핀전에서 승리하자 선수들이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던 이유다. 그 눈물엔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여자야구인 중 편하게 야구만 해왔던 이는 없다. ‘여자가 야구를 한다’며 신기함과 의구심이 섞인 눈길을 받지 않아본 이 없다. 전국에 고작 45개 여자 사회인 야구팀이 있다. 경기를 하기 위해 전국 팔도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 많지 않다.

그럼에도 모두 자기 돈과 시간을 투자해 야구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야구를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어 사비로 레슨장을 다니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을 오른다.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야밤에 아파트 주차장에 가서 배트를 휘두른다. 141g 밖에 안 되는 그 작은 공놀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본능대로 살고 있어요.” 대표팀 주장 최민희의 말대로 야구는 이들의 ‘본능’이다. 미래가 불안해도 계속하게 되는 ‘본능’이다.

한 시인이 그랬다. ‘청춘’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강한 의지를 갖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열정이라고. 이들을 보면서 느꼈다. 청춘(靑春)이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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