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변화의 시그널일까. KBO리그가 꿈틀거리고 있다. 팬 입장에서는 새로운 볼거리, 기대감 등이 생긴 셈이다. 작전야구의 시대가 오고 있다.

백미는 지난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KIA 김규성이 홈스틸을 한 장면이다. 김규성이 홈으로 스타트를 끊는 순간, 1,2루에 있던 주자도 함께 도루를 감행해 ‘트리플 스틸’을 완성했다. LG 투수 함덕주가 던진 공이 홈으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하던 김규성의 몸에 맞아 뒤로 흘렀고, LG 염경엽 감독의 어필에도 불구하고 공식 트리플 스틸로 인정됐다. 투구 전에 도루 스타트한 게 근거였다.

트리플 스틸은 이번이 역대 7번째이고, KIA에서는 처음이다. LG가 2014년7월16일 잠실 삼성전 6회에 감행한 뒤 자취를 감췄는데, 9년 만에 재현한 진기록이다. 지난해 KIA 지휘봉을 잡은 김종국 감독에게 기대했던 그림이기도 하다. 유격수 출신인 김 감독은 KIA와 대표팀에서 작전, 주루 코치로 오랜 노하우를 쌓았고, 원클럽맨으로 지휘봉을 잡은 뒤 “작전야구를 전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첫 시즌에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는데, 올해는 선수 교체도 활발하고, 요소요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반등을 이끌고 있다.

롯데도 작전야구 대열에 가세했다. 상대 투수의 습관 분석에 일가견있는 김평호 코치와 ‘대도’ 출신인 전준호 코치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활발한 작전으로 롯데 야구 색깔을 바꿔놓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롯데 타선을 책임지고 있는 박흥식 수석코치의 경험에 베테랑 코치들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게 눈에 띈다. 베테랑들이 많은 팀은 자칫 더그아웃이나 라커룸 분위기가 크게 다운될 수 있다.

실제 롯데는 개막 초반에는 레임덕을 의심할 만큼 무거운 기류가 감돌았는데, 베테랑들이 솔선수범해 그라운드를 활보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후배들도 눈치보지 않고 경기에 몸을 던진다. 예기치 못한 부상에 빠질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시너지효과가 일어나 팀이 활기를 띤다. 덕분에 롯데는 4705일 만에 8연승 휘파람을 불며 11년 만에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KIA에 일격을 당했지만, LG는 개막 전부터 ‘작전야구’를 지향했다. 작전야구 전문가 염경엽 감독에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추앙받는 박경완 코치, 전력분석의 달인 김정준 수석코치가 이끌어 상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선수들도 육성 장기플랜 속 1군 경험을 쌓아 스태프와 선수들의 합이 맞아떨어지면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패하는 경우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두려움없이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작전야구를 구사하는 팀이 증가하면 그라운드가 활발해진다. 관전하는 쪽에서도 언제 어디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몰라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작전성공과 실패는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열쇠다. 여기에 환호하는 관중들의 함성은 짧은 동영상으로 재가공돼 온라인·모바일 세상에 뿌려진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 입소문이 되고, 리그 흥행으로 이어진다. 선순환이다.

KBO리그는 지난 수년 동안 무색무취였다. 슈퍼스타 부재에 새얼굴 발굴까지 정체기에 놓인데다 인위적인 리그 확장으로 경기질이 크게 떨어졌다. 사건사고 등으로 대중의 외면을 자초했고, 국제대회 흥행 참패로 놀림감으로 전락하는 참극을 맛봤다. 그러나 올해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실패에도 불구하고 개막전 전 구장 만원관중으로 기분좋게 출발했다. 시속 160㎞를 뿌려대는 젊은 투수가 등장했고, 각 팀이 허를 찌르는 작전야구로 경기 흐름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야구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진화할 요소가 많다는 의미다. 올해 KBO리그가 변혁의 바람을 타고 있다. 이 기세가 시즌 끝까지 유지되기를 바란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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