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처음\' 박용택 은퇴식과 함께 열린 롯데-LG전[포토]
지난 7월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롯데자이언츠와 LG트윈스의 경기에 만원관중이 찾아왔다. 박용택의 은퇴식이 2년여 기다림 끝에 열린 가운데 많은 팬들을 불러모은 야구장 열기가 폭염만큼 후끈하다.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만원관중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발달장애인, 사지마비장애인도 있고, 교통사고로 임시로 휠체어에 의지해 휠체어석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SSG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 문학SSG랜더스필드에 열린 지난 4월8일부터 8월12일까지 총 50경기 동안 일반석에 앉은 장애인은 총 2067명이다. 이마저도 휠체어석에 앉은 장애인 관중과 경증 장애인은 제외한 숫자다. 자료에 따르면 랜더스필드에 중증 장애를 가진 관중이 한 경기 당 평균 40명 넘게 찾는 셈이다.

SSG의 장애인 입장권 가격이 저렴한 편인 것, 평균 관중 수가 가장 많은 것 등을 고려해볼 때 프로야구 10개 구단으로 확대해보면 지난 5개월 간 일반석을 찾는 장애인은 최소 1만 명에서 최대 2만 명 사이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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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10개 구단 장애인 입장료 정리표.

◇장애인이 내야석에 앉으면 왜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할까

키움, 롯데, LG, 두산 구단은 장애인이 내야석에 앉을 경우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키움과 롯데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다. 구단 정책일 뿐”이라고 답했다. 두산 관계자는 “내야석의 경우 카드할인 등 프로모션 할인을 제외하면 다른 할인 권종이 없다. 장애인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외야석만 할인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구단은 구단 정책 상 외야석에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내야석에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뚜렷하게 없다. 서울 잠실구장의 경우 내야석은 1만9650석이다. 전체 2만3750석 중 82.7%다. 다른 구장도 엇비슷하다.

두산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간 외야석 판매 비율은 9%(4267매), 내야석 판매 비율은 91%(4만657매)였다. 전체 관중의 91%가 내야석에 앉는다. 그렇다면 장애인 관중이 야구를 보러 온다면 외야보다는 내야에 앉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외야에는 할인 혜택을 주면서 더 많은 장애인 관중이 앉는 내야에는 할인 혜택을 주지 못하는지 명확한 설명이 부재하다. 자칫 ‘보여주기식’ 장애인 할인 정책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 중 ‘경증 장애인’은 할인 대상에서 배제

지난 2019년 7월, 장애 등급제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장애인 등록은 기존 1~6등급으로 나누던 ‘장애등급’이 아닌 ‘장애정도’로 구분한다. 기존 1~3등급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 장애인)으로, 4~6등급은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 장애인)으로 인정된다.

SSG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좌석 위치와 상관없이 일괄 4000원에 입장권 가격을 책정했지만 경증 장애인에 대한 할인 혜택은 없다. 이에 대해 SSG 관계자는 “구단 입장권 정책”이라는 답변을 남겼다.

그러나 중증 장애인보다 경증 장애인이 상대적으로 야구장을 더 많이 찾지 않을까. 장애를 가진 관중의 대부분은 경증 장애인일 확률이 높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 장애인 등록 인구는 전체 국민의 5.1%인 264만5000명이다. 이 중 62.8%인 166만 명이 경증 장애인에 해당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장애 정도가 심각할수록 야구장을 찾을 확률은 낮다.

NC의 경우 중증 장애인에는 학생 요금과 동일하게 입장료를 받지만 경증 장애인에는 할인 혜택이 없다. NC 관계자는 “관행에 따라 창단 때 부터 중증(1-3등급) 장애인에게만 할인을 적용해왔으나 올시즌 여러 차례 지역 장애인분들을 야구장에 초청해 관람 기회를 드리면서 장애인분들에 대한 혜택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꼈다. 2023시즌부터는 중·경증 장애인 구분 없이 할인혜택을 적용하고자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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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롯데와 키움 경기. 롯데 응원석에서 관중들이 응원하고 있다. 고척 | 황혜정기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장애인은 할인 혜택을 받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동일한 경기를 보더라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온전히 관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장애인의 직접적인 체육활동을 넘어 스포츠 관람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의 진정세로 외부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경기장에 방문해 야구, 축구 등 스포츠를 관람하고자 하는 장애인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장애인 관람객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스포츠 관람 기회를 제공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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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양키스 구단 홈페이지 중 장애인 관중을 위한 시설 및 제도 설명글 갈무리.

◇MLB는 할인 없는 대신 ‘장애인법’에 근거한 시설 구비 완료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국내 프로야구와 정반대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장애인법’에 따라 장애인 관중에 티켓을 할인해주는 대신 다양하고 실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중 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 관중을 위해 보조 청취 기기 제공,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휴대용 라디오가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청각 장애인 관중을 위해서는 소형 패드가 주어지며 화면에 실시간으로 경기 중계 자막이 띄워진다.

집과 구장까지 오가는 버스와 택시 이용 서비스는 물론, 홈경기 일정 및 기타 안내 사항을 점자로 변환해 제공한다. 구장 내 매점과 편의시설에 커다란 점자 글자판과 읽어주는 서비스가 있으며, 구장 내부에도 화살표에 점자가 박혀 있어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전동 휠체어나 의료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는 좌석을 우선적으로 제공해주며, 16개의 엘레베이터가 구장 내에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입장도 역시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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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MLB 아틀란타 구단과 주고받은 메일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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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MLB 양키스 구단과 주고받은 메일 일부.

장애인 관중은 직접 예매하기 어렵다면 구단에 연락해 티켓을 예매할 수 있다. 장애인 관중을 위한 전담팀이 따로 있어 구장 이용에 편의를 제공한다.

필자가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연락을 취해본 결과 각 구단으로부터 “장애인 관중을 위한 티켓 할인 정책은 없지만, 즉각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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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국회의원(왼쪽)과 허구연 KBO총재. 사진 제공 | KBO

지난 7월22일 한국야구위원회(KBO) 허구연 총재는 김예지 국회의원(국민의힘)과 만나 장애인의 프로야구 경기장 관람시 불편사항 및 고충을 듣고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허 총재는 당시 김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의 스포츠 관람권 보장과 관련한 스포츠산업 진흥법 개정안’ 취지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장애인의 KBO 리그 관람 편의 증대를 위해 경기장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이에 따라 프로야구 구단들의 노력도 여의치 않다.

A구단 관계자는 “현재 구장 내에 엘레베이터나 휠체어 동선 등이 잘 구비돼 있지만, 장애인 스포츠 관람 보장과 관련해서는 코로나19펜데믹으로 인해 구단 사정이 어려워져 근거리 라디오 설치 비용, 안내인 인건비 등까지 마련할 여력이 없다.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 정부에서 예산을 보조해준다면 적극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시즌 9월1일까지 총 471만3972명의 관중이 프로야구장을 찾았다. 이 중 최소 1만 명은 장애인이다. 만약, 나머지 470만 명이 장애인 관중이었다면 야구장은 이미 장애인 편의 중심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장애인의 동등한 스포츠 관람을 위한 시설이 미비하다면 티켓가격 할인이라도 필요하다. 소수자 배려를 위한 일부 구단 정책에 아쉬움이 남는다. 시작은 장애인에 대한 작은 관심이다.

미국에서 KBO리그 개막전, 돔구장 신설 등 다양한 이벤트와 새로운 시설 건축도 좋지만 대한민국 5%를 차지하는 장애인을 위한 야구장의 제도와 시설이 발전한다면 이 또한 한국 야구팬의 자부심이 될 것이다.

황혜정 두리번 컷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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