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컷

[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내홍을 겪은 IBK 기업은행 여자 배구단은 시즌 도중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친 김호철 감독을 시즌 도중 새 사령탑에 앉혔다. 단내나는 훈련을 예고하는 기사를 보면서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과 스타일은 변하지 않는 법.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여성 스포츠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이룬 업적이 참으로 대단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국 스포츠가 올림픽을 포함해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첫 번째 쾌거가 여자 탁구다.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최초로 여자 단체전 정상에 올랐다.

여자 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사상 구기 종목 첫 금메달도 여성이 일궈냈다. 여자 핸드볼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해낸 데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최초 2연패를 달성했다. 남자 구기 종목 금메달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다.

여성 스포츠가 역사적인 일을 이룩했지만 지도자 분포를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여성 종목에서도 남성의 지배를 철저히 받고 있다.

여자 프로농구 6개 팀 가운데 BNK 썸 박정은 감독이 여성으로 유일하다. 인기가 높은 여자 프로배구는 7개 팀 가운데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뿐이다. 코치진도 여성 코치가 없는 팀이 대다수다.

여성 스포츠에 남성 감독이 지배하는 구조는 쉽게 탈피하기 어렵다. 감독을 선택하는 기업의 간부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여자 스타플레이어가 목청을 높여야 함에도 이들이 오히려 조용하다. 자신의 관리만 잘하면 코치, 감독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 제도로 남성 위주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말과 구호로는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NFL(북미미식축구리그)의 선수 분포는 흑인이 70% 이상 차지한다. 15~16년 전만 해도 흑인 감독은 고사하고 코치도 드물었다. 대학 풋볼은 여전히 백인이 지배하고 있다.

NFL 코치진은 백인 위주였으나 흑인에게도 설 땅이 만들어졌다. 바로 ‘루니 룰(Rooney Rule)’ 때문이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전 구단주 댄 루니가 2003년 주장한 데서 ‘루니 룰’이라고 이름 붙였다. 감독 자리가 공석일 때 필히 흑인 후보자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도입하자고 주장했고 NFL은 규약으로 명시했다.

피츠버그는 슈퍼볼에서 최다인 6차례 우승한 명문이다. 한국계 하인즈 워드를 배출한 팀이다. 감독을 자주 교체하지 않는 피츠버그의 현재 감독은 흑인 마이크 톰린이다. 2007년부터 피츠버그 감독을 역임하며 한 차례 슈퍼볼 우승을 이끌었다.

루니 룰은 NFL판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으로 소수계 보호 정책이다. NBA는 흑인 감독이 다수 배출된 상황이다. NFL은 루니 룰 도입으로 예전보다 흑인 코치가 대거 기용됐다. 하지만 흑인 감독은 여전히 손에 꼽힌다.

국내 스포츠도 여성 종목에는 리그나 협회가 앞장서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할 보호책을 만들어야 한다. 루니 룰처럼 여자 프로배구와 여자 프로농구는 감독 공석중일 때 여성 후보 인터뷰를 무조건 하도록 규약을 만들어야 한다.

moonsy1028@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