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컷

[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다저스타디움에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취재할 때 가장 부러운 게 관중 분포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들이 손을 잡고 옛 자신이 좋아했던 선수의 저지를 입고 구장에 나타난다. 예전 저지를 보관하고 있는 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재키 로빈슨, 피 위 리스, 듀크 스나이더, 샌디 쿠팩스, 돈 드라스데일 등 브루클린과 LA 다저스의 레전더리들이 소환된다.

가격이 가장 비싼 월드시리즈가 벌어지면 중년 이상의 노인 팬들 분포는 더 확산된다. 5만5천 여 관중이 다저스타디움을 가득 메운다. 노년층 팬들은 브루클린과 쿠팩스, 드라이스데일의 1960년대 전성기를 회상하며 홈팀 다저스를 열렬히 응원한다.

2021년 2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팬들도 같았다. 1995년 우승멤버 마운드의 트로이카,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3루수 치퍼 존스, 외야수 앤드류 존스, 보비 콕스 감독의 저지가 트루이스트파크에 물결쳤다.

KBO리그도 이제 본격적인 포스트시즌이다. 준PO는 방송사가 가장 원하는 카드 서울의 한 지붕 두 가족 두산 베어스-LG 트윈스의 대결이다.

1993년 두 팀은 처음 가을야구에서 격돌했다.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LG와 OB와 너무 어울렸던 윤동균 감독의 베어스는 1승1패로 팽팽했다. 1차전 LG 2-1, 2차전 OB 1-0 승에서 알 수 있듯 라이벌다운 명승부였다.

28년 전에는 선발과 불펜의 보직도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터라 구위가 좋은 투수는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무등산 폭격기로 통했던 선동열의 쓰임도 그랬다. 3차전 승부를 가른 것은 이 해 최고의 시즌을 보낸 OB의 동대문상고(현 청원고) 출신 루키 김경원의 투입이었다.

김경원은 입단 첫 해 평균자책점 1.12를 기록한 뒤 이후 한번도 루키 때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윤동균 감독은 불펜의 김경원 카드를 뽑았는데 당시 전문가들은 슬라이더가 빼어난 이광우를 투입했으면 승부는 OB쪽으로 기울어졌을 것이라는 관전평이 우세했다.

OB가 2차전에서 1-0 완봉승을 거둘 때는 선발 이광우-불펜 김경원 조합이었다. 이광우는 3.1이닝 밖에 던지지 않아 3차전 불펜 투입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윤 감독은 동대문상고 후배인 김경원을 오로지 믿었다. LG 타자들은 이광우의 슬라이더에 무척 약했다.

결국 김경원은 1-1 동점을 이룬 8회 4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LG는 라이벌전에서 5-2. 시리즈 2승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역대 준플레이오프 및 포스트시즌의 최고 승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두산과 LG, 그리고 KBO는 이번 준PO에 1993년 잠실구장에서 응원했던 팬들을 다시 잠실벌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1993년 두 팀과 인연이 되는 아이템을 갖고 있다면 혜택을 주는 방법도 모색하는 게 좋다. 이 때 20대 팬들은 40대 후반 50대 중년이 됐을 것이다. 일상생활에 다소 여유를 가질 연배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쉬운 점은 역사의 단절이다. 1993년 OB와 LG의 라이벌전 준PO가 있었기에 2021년의 KBO리그가 존재하는 것이다. 팬들의 구성도 마찬가지다.

올해 KBO리그는 숱한 악재로 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처지다. 하지만 야구팬은 야구와 담을 쌓을 수는 없다. 싫어도 야구고, LG고, 두산이다. 구단과 KBO가 먼저 팔을 걷어 붙일 때다. 행동이 중요하다.

moonsy10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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