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셋톱박스 일명 ‘신품화’ 작업 거쳐 ‘박스갈이’만고객에겐 ‘중고’란 언급 안 하고 설치…대여료·위약금은 그대로 챙겨
KakaoTalk_20200412_182621183
국내 유료방송업계 1위 KT가 10년이 넘은 셋톱박스·모뎀 등 중고 단말기를 신품화 작업 후 새 박스에 담아 고객에게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포츠서울 김민규기자]국내 유료방송업계 1위 KT가 10년도 넘은 중고 셋톱박스·모뎀 등 단말을 일명 ‘신품화’ 작업 후 박스만 새 것으로 교체하는 ‘박스갈이’를 통해 고객에게 재임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KT는 고객에게 중고 단말이란 고지를 하지 않은 채 단말 임대료·위약금은 신품과 똑같이 받고 있어 고객을 기만하는 얄팍한 상술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KT 측은 “고객은 셋톱박스가 중고인지 새 제품인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KT가 이런 소비자 심리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00412_151018641_03
KT 현장직원들이 수거한 KT 셋톱박스와 모뎀 모습.

◇ 10년 넘은 셋톱박스가 새 제품으로 ‘둔갑’

KT 내부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10년이 넘은 셋톱박스도 ‘신품화’ 과정을 거쳐 신품으로 둔갑한다. KT에서 셋톱박스·모뎀회수를 하는 직원 A씨는 “신품화 과정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며 “단말 겉에 보이는 먼지를 털어내고 단말의 버튼이나 단자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새 것처럼 비닐을 씌워 새 박스에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새 박스에 담겨있고 새 것처럼 포장이 돼있다 보니 중고 단말이란 인식을 하지 못한다. 고객에게 중고 단말이란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고객들은 셋톱박스가 중고인지 새 제품인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고객들은 TV를 보기 위해 셋톱박스를 빌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고객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통신장비가 중고인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놨다. 또한 이 관계자는 “약관에 제품 성능검사를 거친 중고 제품은 재사용해도 된다고 돼 있다”는 해명을 덧붙였다. 제품 성능검사를 어디서, 어떻게 진행하느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에는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즉답을 피했다.

KakaoTalk_20200412_182730401
신품화 작업을 한 KT 중고 모뎀.

◇ 중고 단말인데 요금은 그대로

KT 고객은 5년이 됐건 10년이 됐건 신품화 작업을 거친 중고 단말의 임대료를 똑같이 내고 사용하고 있다. 셋톱박스 임대료의 경우 3년 약정 시 무료로 제공하지만 중도 해지 시 위약금이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4년 전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임에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국내 통신사들이 최대 10년이 지난 중고 인터넷 모뎀·셋톱박스 등 장비를 새 것처럼 설치해주고 새 제품과 같은 임대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장비가 중도에 고장이 발생하거나 분실 시 사용자에게 책임이 있을 경우 새 제품과 똑같은 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후 KT는 인터넷 중고 모뎀의 임대료를 인하했지만 TV 셋톱박스의 임대료에는 변동이 없었다. A씨는 “이 같은 지적을 받은 후 KT는 인터넷 모뎀(와이파이 기기 모뎀 포함)의 중고 임대료를 40% 가량 인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셋톱박스 임대료는 그대로다. 오히려 고객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부분은 가격을 낮추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KakaoTalk_20200412_182728271
KT가 중고 셋톱박스를 신품화 작업 후 새 박스에 담은 모습.

◇ “생애 첫 내 집인데, 중고품 불쾌했다”

KT 중고 셋톱박스를 사용하다 피해를 본 소비자 2명과 연락이 닿았다. 이들은 “중고제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불쾌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전북 익산시 영등동에 거주하는 김수호(36)씨는 “생애 처음 내 집을 마련해 새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KT를 통해 TV와 인터넷을 묶어서 설치했다. 그런데 TV를 켜니 작동하지 않았다. 셋톱박스의 버튼을 눌렀더니 갑자기 부품이 안쪽으로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설치 당시에는 겉으로 봐서 중고제품인지 알 수 없었고 고지도 없었다”면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고 다시 설치기사가 와서 새 것으로 교체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하면서 가전제품들도 모두 새 것으로 바꿨는데 기분이 매우 나빴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은 것 같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동에 거주하는 소비자 정영애(43)씨는 “다른 통신사를 이용하다가 KT에 신규가입을 하면서 TV와 인터넷을 함께 설치했다. 분명 박스는 새 것이었는데 설치하고 보니 단말 밑 부분에 먼지가 쌓여있는데다 버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황당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신규 가입을 했는데 누군가 사용한 단말을 설치한 것에 기분이 상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2주일 만에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KT서비스 직원 B씨는 “고객의 입장에서 중고 단말임을 알 경우 찜찜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충청 지역에서 올라온 소비자 불만에는 셋톱박스 단말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어 “단말 설치 전 고객에게 중고 단말이란 사실을 고지하고, 회사는 중고 단말 임대 시 요금인하 등 대책을 마련해 고객들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 코로나19에도 모뎀·셋톱박스 회수는 ‘강행군’ 왜?

최근 코로나19로 기업이 재택근무 등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KT 역시 직원들의 순환 2부제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지만 모뎀회수·설치를 맡은 AS기사 등 현장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무리한 업무강행 역시 중고 단말 설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일부 현장직원들의 지적이다. KT 직원 A씨는 “새 단말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중고 단말을 회수해 신품화 작업을 거쳐 다시 고객에게 재임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상황은 고객의 건강에도 문제를 끼칠 수 있다. 오래된 셋톱박스에는 틈이 있는데 그 곳을 통해 벌레나 세균 등이 집에서 집으로 옮겨질 수 있다. 바이러스라고 해서 옮겨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중고 단말의 신품화 과정에서 소독 등의 과정은 없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모뎀 수급 담당들이 신품화 작업 현장 견학을 갔는데 정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먼지만 털고 육안으로 보이는 스크래치 등을 메우고 간단한 테스트만 해서 내보내는 시스템”이라며 “그럼에도 고객에게 중고 단말이란 얘기는 일체 없이새 제품과 똑같은 요금을 받는 것은 KT가 고객을 심각하게 기만하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kmg@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