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규
조성규.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이주상기자] 복서 출신 탤런트 조성규(58)의 직장은 두 곳이다. 하나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별관이고, 또 하나는 인근의 복싱 체육관이다. 체육관은 조성규의 후배가 운영하는 곳으로 틈 날 때마다 들러 땀을 흘린다.

조성규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군 동면 방량리다. 어렸을 적 새벽 닭울음소리에 깨어나곤 했지만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칠흑 같기만 한 곳이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권투였다. 김기수, 홍수환이 대서양 건너, 태평양 건너서 들려주는 승전보는 전국민은 물론 두메산골 조성규의 눈과 귀를 흑백 TV에 고정시켰다. 동네 이장 집에만 TV가 있어 경기가 있으면 온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던 시절이었다. 강원도 깊은 산속을 벗어날 수 없었던 소년 조성규는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자. 그러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라며 굳은 결심을 했고, 결심을 실천으로 옮겨졌다.

권투를 통해 고향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조성규는 서울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유망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챔피언이 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선수 겸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어느 날 지인을 통해 알고 지내던 배우 김보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화에 출연 중인데, 극중 권투선수로 출연 해달라는 요구였다. 선수 역할을 맡은 배우의 리얼리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조성규는 탤런트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탤런트라는 말보다는 배우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당시 조성규에게 탤런트라는 직함(?)은 또 다른 신분증이었다. 그에게 탤런트라는 직함이 두 번째 직업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굳이 배우라는 말보다는 탤런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다.

조성규의 관심은 권투와 탤런트일 뿐이다. 지난해에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자신보다 34살이나 어린 함상명과 대결을 벌이는 이벤트를 벌였다. 함상명은 한국선수로는 4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복싱부문에 출전한 유일한 선수였고, 올해도 선발전을 통해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최강이다. 퇴색해가는 권투 인기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어 벌인 이벤트성 경기였다. 비록 KO패했지만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며 복싱을 그나마 국민과 가까이 갈 수 있게 했다.

직장처럼 다니는 여의도 KBS 별관. 탤런트를 시작하게 된 곳이다. 1992년 KBS 일일연속극 ‘가시나무꽃’을 시작으로 최근에 출연한 의학 추적 스릴러 ‘닥터X의 사선에서’까지 몸과 마음을 가담으며 출퇴근하는 곳이다. 복서와 탤런트, 외길 인생만 살아온 조성규를 그의 여의도 직장 옆 체육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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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규.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권투의 매력은.

두메산골을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권투만의 순수함과 열정에 빠졌다. 거친 공간에서 주먹을 뻗으며, 한계를 컨트롤하는 것은 세상의 삶과 비슷하다. 자신의 일터에서 터프한 면도 있어야 하겠지만 때론 인내를 갖춰야 할, 낮춰야 할 때가 너무 많다. 권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또 건강관리를 위해서도 최고다. 체육관에 들르면 줄넘기 3회, 섀도우 복싱 3회, 샌드백 및 미트 치기 3회를 꼭 한다. 삶의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리는 상쾌한 굵은 땀방울, 그게 바로 복싱의 매력이다.

-탤런트의 매력은?

지인들은 내가 빨리 스타가 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많이 알려진다고 해서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다. 크고 작은 역할에 관계없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역할에 온 힘을 다했을 때,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을 때, 그게 바로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의리의 탤런트’라고 불리는데, 친한 연예인이 있다면.

MBC 23기 공채 탤런트 김세민, 가수 설운도 형님, 동향 후배인 가수 박상철, 몸짱스타 이정용, 톱스타 최수종과 친하다. 김세민은 형편이 아주 어려울 때 집에 있는 쌀을 가져올 정도로 나를 아껴줬다. 설운도 형님은 20년 가까이, 마치 친형님처럼 인생이 어려울 때마다 ‘넌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준 형님이다. 갑작스럽게 지방 촬영을 갈 때면 기름 값에 보태 쓰라고 용돈도 많이 줬다.(웃음) 박상철은 30년 가까이 친분을 쌓아오고 있다. 내 체면을 살려준다고 일부러 권투 대회 때마다 직접 찾아와 애국가를 불러줬다. 몸짱스타 이정용도 든든한 동료다. 아무리 어렵고 바빠도 내 부탁을 꼭 들어주는 의리의 사나이다. 최수종도 빼놓을 수 없다. 2003년 얼굴피부시술 후유증으로 모 피부과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할 때 최수종은 변호사 선임에 사용하라며 돈 1000만 원을 선뜻 내놨다. 그 후에도 어머니가 아프실 때, 내 건강이 안 좋을 때도 치료비라고 쓰라며 많이 도와줬다. 2009년 20년 만의 링 복귀전을 치를 때는 김세민과 함께 세컨드로 참여해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MBC 인기드라마 ‘내조의 여왕’ 연출했던 고동선 PD도 많은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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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규.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58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날렵하다

자신에게 맞는 체계적인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 권투선수 출신으로 내가 권유하고 싶은 운동은 조깅이다. 5분은 빠르게, 5분은 느리게를 병행하면 굉장히 좋다. 또 권투선수처럼 양손을 앞으로 뻗으며 움직이면 혈액순환에 많은 도움이 된다. 체육관에 나가 샌드백을 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좋다.(웃음)

-기억에 남는 작품은.

1995년 인기리에 방영된 KBS-2TV 주말연속극 ‘젊은이의 양지’다. 나는 복싱체육관의 터줏대감인 땡초역으로 17회부터 마지막 회(56회)까지 출연했다. 큰 역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다른 연기자들과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라마 사상 62.7%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젊은이의 양지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조소혜 작가에 의해서다. 조소혜 작가가 극중에 나오는 권투 장면 때문에 나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아예 내말을 듣고 ‘땡초’역에 캐스팅했다.

-한국권투가 침체기에 있다. 권투인으로서 의견을 듣고 싶다.

한국권투는 2005년 지인진을 마지막으로 15년째 단 한 명의 세계 챔피언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권투의 커미셔너(위원회 및 협회)는 자그마치 6개나 된다. 선수는 적은데 단체는 많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구조다. 권투를 살린다는 마음으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릇된 생각으론 절대 부흥할 수가 없다.

-함상명과의 경기는 무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복싱 활성화를 위해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함상명 선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면 시시할 것 같아 라운드 내내 고민했다. 다행히 3라운드 후반쯤 왼쪽 턱에 뭔가 닿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잽싸게 나동그라졌다. 그 순간만큼은 내 인생 최고의 리액션이 아닌가 싶다.(웃음)

- 올해 계획은.

드라마를 비롯해 방송에 집중하고 싶다. 지난 5년간은 복싱 심판일을 병행하느라 방송일에 매진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방송환경이 변화하고 콘텐츠도 매우 넓어졌다.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을 비롯해 케이블 방송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다.

- 감동 깊게 본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1979년에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챔프’다. 권투선수인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애틋한 부성애를 그린 영화다. 아버지는 존 보이트, 아들은 릭 슈로더가 맡았다.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며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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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규.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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