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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작가. 제공|더페이지갤러리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설치미술가 겸 영화감독 임흥순 작가는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가다. 그런 그가 광주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도시의 아픔을 조명한 신작으로 돌아왔다.

임흥순 작가는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인전 ‘고스트 가이드’(GHOST GUIDE)를 최근 열었다. 2018년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출품했던 ‘좋은 빛, 좋은 공기’를 비롯해 ‘고스트 가이드’, ‘친애하는 지구’ 등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광주의 닮은꼴을 발견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970년대, 광주는 1980년대 군부 독재 정권 치하에서 시민들이 집단 학살을 당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됐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지금도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불 한 채가 유령처럼 서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불 유령 주변으로는 작가가 국내나 해외에서 수집한 돌들이 둥글게 놓여있다. 돌이 있던 장소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이나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당시 감금이나 고문의 장소다. 잔혹한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본 돌들이다. 이불 유령 양쪽으로 설치된 흑백사진은 각각 아르헨티나와 광주의 아픔을 담았다. 현장을 찾아 직접 촬영한 사진들에서 아픔의 과거를 소환한다.

고스트가이드
고스트가이드 한 장면. 제공|더페이지갤러리

전시 제목인 ‘고스트 가이드’는 집단 학살로 유령이 되거나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러내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고 애도하고 위로하는 의미를 담았다. 아르헨티나의 법의학자가 유해를 찾아 유전자를 조사해 가족들에게 인계하는 모습과 직접 5·18을 경험하고 현재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묘지를 정비하는 정원사가 된 사람의 모습에서 ‘고스트 가이드’라는 제목을 떠올렸다는 설명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흥순 작가는 “작업을 하면서 관련된 꿈을 많이 꾼다. 꿈속에 폐허의 공터인 빈 공간에 죽은 자들이 들어오고 안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폐허에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미술관처럼 변하기도 했다. 갤러리나 병원, 학교는 치유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종자를 찾고 안내하고 잘 보내는 일을 생각하다보니 내 구실도 미술가로서 유령을 안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비엔날레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소설가 한강과 함께 참여해 선보였던 ‘좋은 빛, 좋은 공기’를 국내 관객을 위해 처음 공개했다. 전시장에는 두 개의 스크린을 마주 보게 설치하고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소리가 교차돼 나오기 때문에 광주의 영상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소리가 얹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영상에 광주의 소리가 입혀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임흥순 작가는 “광주와 대한민국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다. 2년전 우연치않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게 됐는데 1970년대 군부 독재 시절 3만명 이상이 죽고 실종됐으며 실종된 자식을 찾기 위해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1977년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시위를 벌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얘기를 들으며 광주를 떠올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광주와 반대에 있는 도시이고 시간도 다르고 계절도 다른데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좋은빛
좋은 빛, 좋은 공기 한 장면. 제공|더페이지갤러리

작가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시명에서도 의미를 찾았다. “광주는 빛이라는 뜻이 담겨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뜻”이라는 임 작가는 “역설적이게 두 도시는 당시 숨도 못쉬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님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남겨진 것들을 보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간이 주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서서히 풀어가기 시작했다. 영화 작업을 하다가 동물, 숲, 흙, 땅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땅 안에 있는 잔해를 통해 이분들의 심정, 의미 등을 기억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임흥순 작가는 여성노동자, 국가적 학살 피해자, 탈북자, 이주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에 주목해 작업해왔다. 4·3 제주학살 희생자들을 다룬 ‘비념’(2014), 구로공단 여공부터 현재 여성노동자의 삶을 다룬 ‘위로공단’(2014), 베트남전쟁이나 빨치산 등 역사적 사건에서 고통을 겪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 여성탈북자를 조명한 ‘려행’(2019) 등 주변부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에 시선을 뒀다. ‘위로공단’으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았다.

전시는 2020년 1월 23일까지 계속된다.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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