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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 14일 레바논과 원정 경기 도중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카타르 월드컵은 3년 뒤에 벌어진다.

벤투호가 레바논 원정에서 결과는 물론 내용까지 잡지 못했다. 불안한 선두에 대해 축구팬들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뻔히 보이는 선수 기용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축구는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황의조 등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공격 자원들이 여럿 된다. 어느 때보다 화려한 스쿼드로 아시아 축구 자랑이 되고 있다. 정작 벤투호에선 이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치열한 주전 경쟁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축구계에선 “벌써부터 카타르 월드컵 최종엔트리 윤곽이 나온 것 아니냐”는 말까지 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은 아직 멀었다. 특히 이번 2022년 카타르 대회의 경우, 겨울로 개최 시기가 이동하면서 아직 3년이나 남은 상태다. ‘원 팀’ 만큼이나 경쟁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1박2일’ 작전은 실패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4일 레바논과 치른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H조 4차전 원정 경기에서 헛심 공방 끝에 0-0으로 비겼다. 지난달 북한과 평양 원정에 이은 2연속 0-0 무승부다. 한국은 승점 8을 기록하며 H조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승점 7)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이상 승점 6) 등 다른 3팀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북한 레바논과 남은 3경기가 전부 홈인 것은 다행이지만 공은 둥글다. 벤투호의 실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어서 준비 똑바로 하지 않으면 2차예선에서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2차예선을 통과하더라도 최종예선에서 본선행 다툼에 어려움 겪을 수 있다.

한국은 오는 19일 브라질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A매치를 벌인다. 단순 평가전이어서 승패 부담은 크게 없다. 그러나 브라질전에 상관 없이 벤투호의 중간 평가를 냉정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다. 벤투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리의 축구 철학”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런 기조 아래 소속팀 출전 시간이나 현재 컨디션에 상관 없이 자신의 점유율 축구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뽑아 지난 1년 2개월간 조련하고 실전에 임했다. 하지만 북한전 및 레바논전 졸전을 통해 벤투 감독의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 고집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중이다.

벤투 감독은 시행착오를 거쳐 4-1-3-2 포메이션을 원칙적으로 쓰고 있다. 황의조와 손흥민 등 유럽에서 인정받는 1992년생 동갑내기들이 주전 투톱이다. 문제는 2선 자원인데 벤투 감독은 9월 투르크메니스탄전, 10월 북한전에서 나상호와 이재성 황인범을 선발로 썼다. 이번 레바논전에선 지난해 큰 부상 당하기 전까지 자신이 아꼈던 남태희를 나상호 대신 전반부터 뛰게 했다. 문제는 이들 3~4명이 3~4수 아래 스리랑카전을 빼고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손흥민이 1~2선을 오가며 어시스트와 수비 등 헌신적인 플레이에 치중하는 이유는, 2선 공격자원들의 날카로운 침투 및 과감한 슈팅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전 나상호 선제골 말고는 아직 눈에 띄는 장면이 없다. 벤투 감독은 레바논전에서 전반전에 고전하자 후반 들어 황인범과 남태희 이재성을 차례대로 빼고 황희찬과 김신욱 이강인을 집어넣어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후반 들어 잔디 적응부터 해야하는 교체 멤버들이 반전 동력되지 못한 것을 당연했다.

황희찬과 이강인은 손흥민과 함께 지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코리안 트리오’ 3명 중 두 명이다. 김신욱은 중국 슈퍼리그에서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나상호 황인범 남태희도 훌륭한 자원들이지만 이들은 각각 일본과 캐나다 카타르에서 뛰고 있다. 벤투 감독의 철학이 위기에 봉착했다면 경쟁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항상 같은 선수들이 나서다보니 문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김보경이나, 전북에서 업그레이드된 문선민, 패스와 킥이 좋은 제주의 윤빛가람 등 2선에 들어갈만한 국내파 자원들을 거론하고 있다.

벤투 감독의 전체적인 철학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월드컵 본선 엔트리 23명을 다 뽑아놓은 듯한, 베스트일레븐도 굳힌 듯한 선수 구성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카타르 월드컵이 아직 3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철학 속의 변화, 원칙 속의 임기응변이 요구된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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