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ICE LEAGUE
영화 ‘저스티스 리그’의 한 장면. 차 안에서 ‘배트맨’ 부르스 웨인이 ‘플래시’ 배리 앨런으로부터 당신의 초능력이 뭐냐는 질문에 “난 부자야”라고 답하고 있다. 제공 | 워너브라더스

TV를 통해 ‘저스티스 리그’를 다시 봤다. 지난해 처음 봤을 땐 지루해 하다 잠이 들어 취향이 아니구나하고 접었는데, 원더우면 역을 맡은 여배우가 ‘어느 집 자식인지 몰라도 참 예쁘다’란 생각이 들어 이번에 재도전해봤다.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실례될 수도 있겠지만, 다 본 뒤 생각은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주제와 달라보였다는 거다. 3개의 마더박스를 지키고 있던 아틀란티스, 아마존, 인간들의 대표 히어로들이 모였음에도 악당 스테픈울프에게 힘껏 두들겨 맞고 이를 빼앗겼다. 결국 다 같이 힘을 합쳐 마더박스를 되찾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죽었다 환생한 슈퍼맨 덕분이었다. 슈퍼맨은 여전히 다른 히어로들보다 한 차원 위의 능력자였다. 강해보이던 스테픈울프를 어린아이 다루듯 쳐대며 간단히 승리했다. 클라이맥스가 이렇게 짧다니. “슈퍼맨이 일찍 부활했으면 단편영화가 됐을 텐데, 굳이 왜 히어로들이 나서서 시간을 끌었지?” 이런 생각이 든 건 기자뿐이었을까?

어쨌건, 이 영화에서 기자의 귀에 걸리는 두 마디의 대사가 있었다. 모두 배트맨이 한 말이다.

배트맨을 만나 팀에 합류하기로 한 플래시가 자신의 초능력을 자랑한 뒤 “당신은 어떤 초능력이 있나요?”라고 묻자, 배트맨은 “난 부자야”라고 답했다. 놀라워하는 플래시의 표정이 우스웠다.

다음에는 영화 막바지였다. 생활비 때문에 슈퍼맨 어머니가 집을 은행에 넘겨야 했는데, 슈퍼맨이 돌아온 뒤 배트맨의 도움을 이를 되찾았다. 어떻게 된 거냐는 슈퍼맨의 질문에 배트맨은 “은행을 통째로 사버렸어”라고 말한다. 이어 “그냥 지르고 싶었어”라고 한다. 그를 바라보는 슈퍼맨의 눈에도 왠지 모를 경외감이 느껴졌다.

대사는 아니었지만, 배트맨은 플래시가 취직할 수 있도록 추천서도 써줬다. 아들의 취직 소식을 들은 옥중 아버지의 표정도 감동 그 자체였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배트맨의 모습은 불만이었다. 나이에 힘이 부쳐, 스테픈울프의 부하들과의 싸움도 힘겨워하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모습이, 흡사 마음은 여전이 젊은이이고 현장을 누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40대 중반을 넘어 50대를 향하며 뒷방 늙은이로 사그라지고 있는 기자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왠지 퇴물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트맨의 대사에서, 그가 대장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돈이 아니었나 싶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초능력을 갖춘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배트맨은 돈과 기술로 만든 도구로 능력을 갖춘, 다시 말해 그런 도구가 없다면 평범한 인간이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지혜를 무시할 순 없지만.

그러고 보니 어벤저스에도 비슷한 캐릭터가 있다. 아이언맨. 대기업 오너 후계자인 그도 돈과 기술을 들여 만든 아이언맨 재킷을 입었기에 히어로가 됐다. 재킷만 없으면 다른 악당들에게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데. 어쨌건 그는 히어로들을 이끈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아무리 뛰어난 초능력을 갖춘 히어로들도 인간의 방식으로 법을 지키면서 지구에서 살려면 부자가 되기 어렵구나, 그들을 하나로 모아 팀으로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과 함께 인간계에서 돈을 많이 번 부자 히어로가 한 명 이상은 있어야하는구나 이었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영화는 배트맨과 아이언맨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시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돈 있는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희석시켜주는데 일조를 해주는 것 같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대기업 오너들은 늘 악당으로만 그려지는 한국의 상황에 비해선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채명석 증권부장 oricm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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