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손연재 인터뷰
체조 스타 손연재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프 스튜디어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 이후 리본을 들어올리며 포즈를 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예전 선배들이 ‘선수 때가 편했다’는 말씀하셨을 때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절실하게 느낀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부딪히고 성장하면서 새 삶을 살고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초연함이 느껴졌다. 불안과 확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17년 선수 생활을 보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확고한 믿음 속에서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 리듬체조에서 선구자 구실을 해온 손연재(25)가 스포츠서울과 단독 인터뷰를 통해 1년여 만에 언론 앞에 섰다. 지난 2017년 은퇴를 선언한 뒤 몇몇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중과 만나긴 했지만 손연재는 새 비전을 포함한 일상에 관해서는 조용한 행보를 거듭했다. 지난 3월 체조 유망주 육성과 대중화를 목적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문을 연 리프 스튜디오에서 본지와 만난 그는 “선수 때 몰랐던 세상을 배우고 있다. 어릴 땐 이상을 그렸다면 지금은 현실을 더 배우고 있다”면서 남다른 성장통을 고백했다.

손연재
손연재가 지난 2014년 10월 2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펼쳐들고 웃고 있다. 인천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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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가 지난 2016년 8월2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결선에서 후프 연기를 펼치며 오륜기를 배경으로 도약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때, 조금 더 당당했더라면

여섯 살에 리듬체조를 접한 그는 여러 방송을 통해 남다른 재능을 뽐내면서 주목받았다. 2010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뒤 그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종합 동메달을 따냈다. 4년 뒤 인천 대회에선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품었고 국제체조연맹 월드컵시리즈에서도 종목별 금빛 레이스를 이어갔다. 다만 올림픽 메달 꿈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결선 진출에 성공한 뒤 5위를 기록했다. 4년 뒤 브라질 리우 땅에서 시상대 진입을 목표로 마지막 도전에 나섰으나 아쉽게 4위로 마쳤다. 그러나 신체 조건의 열세를 떠안은 동양인이 러시아 등 강대국과 올림픽에서 메달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희망을 유산으로 남겼다.

의미 있는 발자취에도 손연재는 늘 외부의 적과 싸워야 했다. 10대의 어린 나이 때부터 대중의 큰 관심과 응원을 받았지만 동시에 온갖 루머와 조롱도 떠안았다. 이런 극단적인 반응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손연재도 “아마 내가 전무후무한 캐릭터이지 않을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정 선수와 비교를 통해 ‘올림픽 메달도 없는 선수가 과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근거 없는 정치적 이슈와 맞물리며 고초를 겪기도 했다. 리듬 체조의 속성과 역사를 더듬어 그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화려한 퍼포먼스, 외모 등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손연재는 “은퇴 후에도 별 얘기가 다 있었다. 제어할 수가 없더라. 가만히 있어도 (비난 댓글 등이) 많았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서 “선수 시절엔 꼬투리를 잡고 비난하시는 분에 대해서 사실 대응하지 않았다. 그것도 관심으로 여기고 감사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래서 더 오해가 쌓였을 것 같다. 조금 더 당당하게 얘기했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했다. 또 “선수 시절엔 ‘인터뷰를 굳이 왜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 시간에 운동을 더 해야 한다고 여겼다. 방송에 조금이라도 나오면 일부에서 ‘운동은 안 하고 또…’하는 시선으로도 보니 예민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포토] 손연재 인터뷰

◇지도자+기획자…이젠 나를 표현하고 싶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선수 손연재’에 비해 외부와의 소통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그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기에 이젠 미디어든, 팬이든 적극적으로 만날 생각”이라고 했다. 인생 2막의 화두는 리듬 체조 대중화다. 단순히 체조 인구를 늘리는 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살아남을 한국만의 엘리트 선수 커리큘럼을 완성하는 것이다. 지도자 겸 기획자의 삶을 선택했다. 손연재는 “예전 리듬 체조는 키와 선, 즉 몸매가 중요한 경쟁력이었는데 이젠 기술 체조로 바뀌고 있다”면서 “요즘 동양인 선수는 팔, 다리도 유럽 선수 못지않게 길고 표현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손연재의 리듬체조 교실에서 수학하는 유망주 일부도 엘리트 선수로 재능을 갖췄다. 그는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느끼게 됐다.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완성하고 후배들이 이른 나이에 경험한다면 더 빠른 길로 가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그가 기획자로 나서 지난해 추진한 ‘유망주 마스터’ 짐네스틱스 프로젝트도 궤를 같이한다. 올해는 ‘리프 챌린지컵’으로 오는 10월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2회 대회를 연다. 지난해 6개국 체조 유망주가 참가했는데 올해는 2~3개국 더 늘어날 예정이다. 손연재가 선수 시절 친분을 쌓은 전 세계 주요 체조인과 심판진이 한국 땅을 밟는다. 그는 “러시아 선수들은 주니어 때부터 국제 대회를 뛰는데 우리는 체육관에서 훈련만하다가 시니어가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대회에 출전하면 긴장을 많이 해서 실력 발휘를 못한다. 조금이라도 그런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아직은 국내 체조 인프라가 부족하고 관심도 저조해 후원사 등을 유치하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초대 대회 때도 손연재가 사비를 충당해 겨우 대회를 마쳤다. 올해 손연재는 직접 발로 뛰면서 후원사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선수 시절 느끼지 못했던 차가운 세상을 경험하는 게 요즘 그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또다른 나를 발견하고 있다. 선수 시절 매를 많이 맞아서인지 괜찮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포토] 손연재 인터뷰

인터뷰 이후 손연재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리듬 체조 수업에 나섰다. 또렷하게 자신만을 바라보며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 하는 꿈나무를 보며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더라. 꼭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이들에게 체조가 삶의 의미 있는 일부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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