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 중견배우 김형자와 안병경이 부부로 만나 현실냄새 물씬 풍기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들은 오는 3월19일 개막하는 연극 '아버지의 다락방'에서 사이가 미적지근한 황혼 부부로 합을 맞춘다.


두 사람이 연기하는 안주자(김형자 분)와 박현중(안병경 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황혼 부부와 쏙 빼어 닮았다. 뜨겁던 청춘의 사랑은 지나갔고, 익숙한 서로의 모습만큼 커져버린 갈등으로 냉랭한 사이가 된지 오래.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자식이라는 끈을 제거하고 나면 남보다 나은 관계인지도 자신이 없어진다.


'아버지의 다락방'은 부모가 아닌 부부로서 살아가는 것을 잃어버린 노부부의 바삭 메마른 일상을 바꿔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자식들이 두 사람의 관계 개선에 일조해 함께 화합을 이뤄가는게 주된 스토리다.


이 작품은 누구도 공공연히 말하지 않는 노년층의 성(性) 문제도 주저 없이 다룬다. 자주 대화가 끊어지며 이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아내, 평생 가부장적으로 살아와 가족과 소통의 길을 잃어버린 남편, 이들은 어떻게 다시 발맞춰 '이인삼각'을 해나갈 수 있을까.


김형자는 "극중에서 자식들이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 사이를 이해하며 감싸준다. 이런 모습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가족은 서로 끌어안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결국 부부 사이에 자식이 끈이 돼 관계가 개선되는 이야기다. 자식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기성세대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안병경은 "극 중 부부는 떨어져 살기도 했던 사이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을 겪는다면 지옥같은 생활을 할 것 같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존재가 소중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실 가족 이야기를 다룬 연극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차별점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절대 흉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기 힘든 노인의 성을 진솔하게 다룬다는 게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노인의 사랑을 곱게 받아주길 바라는 맥락을 담았다. 시니어 연극의 대표주자가 되고 싶다"라고 입을 모았다.


황혼 부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도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는 안병경. 그는 "젊은 분들이 부모들을 모시고 꼭 함께 봤으면 한다. 작품 속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참고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두 TBC 출신이라는 두 배우는 호흡이 찰떡같다고 자평하며 흡족해했다. 김형자는 "어려서부터 봐서 그런지 호흡이 잘 맞는다. 대사를 하면 서로 주고받는 합이 정말 좋다. 이 배역은 안병경 씨가 아니면 소화 못한다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안병경도 "합이 잘 맞아 진실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는 거다"라고 맞장구쳤다.


두 배우가 데뷔한지도 어느덧 50여년이 됐다. 아직도 현장에서 온 에너지를 쏟아내며 연기할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으로 다가올 터. 김형자는 "선배님들 보면 힘들어하다가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기운 내는 걸 수없이 봐왔다. 이제 제가 그런다"며 "연극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영화보다 출연료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하게 되더라"며 카랑카랑하게 웃었다. 연극으로 데뷔한 안병경도 "오래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특히 연극 무대는 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과 같달까"라고 반응했다.


김형자는 인터뷰 분위기를 특유의 막힘없는 입담으로 유쾌하게 이끌었다. 이 같은 면모는 지난해 TV조선 교양 프로그램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도 드러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형자는 당시에는 아픈 과거를 솔직히 공개하며 대중의 공감을 샀다. 지금이야 기억 속 한 페이지가 됐지만, 두 번의 이혼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개인에게는 긴 터널이었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연기가 큰 버팀목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기가 없었다면 이겨낼 수 없었을 거다. 직업이 있다는 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요즘도 친구들에게 '직업 하나는 잘 선택한 것 같다'고 말한다. 취미생활도 되고 경제적인 것도 해결되는 건 물론, 이 나이가 되도록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이가 드니 과거사도 솔직하게 다 말하게 되더라."


연기의 나이테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이들이지만, 단체 연습을 쉬어가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6일은 반드시 연습실로 향한다. "결국은 가족애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갈등에서 포옹하는 과정으로 접목시킨다. 웃음과 공감을 얻어 가시길 바란다." 김형자의 눈빛은 열정과 바람으로 가득했다.


eun546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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