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수원 l 글·사진 스포츠서울 박준범기자]후인정(後人程).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름의 한자 표기와 뜻은 다르지만, '후커드 미사일'로 불렸던 후인정(侯寅廷)은 배구계에 이정표를 남겼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귀화를 택했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기쁨을 누렸다.


선수 시절엔 19년 중 17년을 현대 유니폼만 입고 코트를 누빈 '원클럽맨'이었다. 여기에 41세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됐다. 그는 "40세가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태극마크 위해 선택한 '귀화'


익히 알려져 있지만, 후인정의 아버지는 배구 선수 출신으로 과거 여자배구팀 감독으로도 활약한 후국기 씨다. 후국기 씨는 선수 시절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귀화하지 못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그는 아들 후인정의 귀화를 흔쾌히 허락한다. 덕분에 후인정은 대학교 3학년이던 1995년 귀화하고, 귀화선수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그는 "대표팀에서 저를 필요로 했고, 저도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다. 어떤 운동선수든 태극마크를 다는 게 목표일 거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해 대회에 나가는 게 뿌듯했다. 국가대표가 안 됐으면 귀화를 안 했을 수도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학생이었지만 뛰어난 실력에 국가대표 경험까지 겸비한 후인정은 경기대학교 졸업 당시, 여러 팀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그는 "1순위가 현대자동차서비스(現 천안 현대캐피탈·이하 현대)였고, 다음이 삼성화재였다. 삼성화재도 생각은 했는데, (김)세진이(現 안산 OK저축은행 감독) 형이 저랑 같은 포지션이다 보니 현대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세진이 형이 다른 포지션이었으면 삼성 쪽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10번 찍어 넘어간 삼성화재…만끽한 우승의 기쁨


그렇게 현대에 입단했지만, 김세진과 신진식(現 대전 삼성화재 감독)이 버티는 삼성화재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현대는 삼성화재에 밀려 9년 연속 준우승에 머문다. 후인정은 "현대도 멤버는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웠던 게 삼성보다 기본기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삼성보다 블로킹은 월등히 좋았지만 한꺼번에 김세진과 신진식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그리고 맞이한 프로 배구 원년(2005년), 우승 트로피는 삼성화재의 몫이었다. 그렇게 절치부심한 2005~2006시즌, 현대는 10년 만에 '2등' 꼬리표를 떼어낸다. 후인정은 "딱 10년째에 이룬 우승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사실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도 많고, 그 선수 중 우승 한 번 못하고 은퇴한 선수들도 많다. 그때 우승을 못 했으면 은퇴할 때까지 우승을 못 할 뻔 했다"면서 "실감이 안 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웃어보였다.


10년의 기다림, 후인정이 생각하는 현대의 우승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김호철 감독님(現 남자 배구대표팀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3년 안에 무조건 삼성 잡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됐다"라면서 "김 감독님이 국내에서 시도 안 한 것들을 많이 주입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점점 몸에 배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또 숀 루니라는 좋은 외국인 선수도 있었고, 모든 게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정상에 서 있었다. 김호철 감독님과 함께 뛰어준 동료들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김 감독과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 아쉬웠던 17년 '현대맨'의 마지막


그러나 프로는 냉정했다. 후인정은 실업 시절부터 현대와 함께한 17년 '원클럽맨'이었지만, 2012~2013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게 본인의 선택이 아닌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그는 "휴가 때 구단에서 전화가 와서 '재계약 안 할 것 같다. 휴가 끝나고 안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현대에서 10년을 넘게 뛰었는데 함께했던 후배들과 악수라도 하고 싶었다. 그것조차 못하게 하니까 사실 서운했다"라고 말을 줄였다.


그러면서도 "다 지나간 일이다. 현대 구단에서 풀어줬기 때문에 한국전력으로 이적이 가능했다.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후인정은 은퇴식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현대에서 은퇴식을 못한 게 아쉽다. 한국전력에 있을 때 현대에서 은퇴식에 대한 연락이 왔는데, 그때는 한국전력에서 반대했다. 양 팀 상황을 이해는 한다. 다만, 평생 시합하고 뛰었던 체육관에서 그리고 팬들 앞에서 은퇴하고 싶었는데"라며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진한 아쉬움에도 현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그는 "현대에서 선수생활 했던 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힘들었던 시기도 많았지만, 행복했던 인생의 한 페이지다"라고 웃어 보였다.


◇ 19년 선수 생활…"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렇게 끝날 것 같던 후인정의 배구인생은 신영철 감독(現 우리카드 감독)의 부름으로 미뤄진다. 한국전력으로의 이적이었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40'이라는 숫자에 더 가까웠고, 더욱이 그는 코트 안 보다 코트 밖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웜업존에서 후배들을 다독이며 최선을 다했다. "경기를 뛰겠다는 마음보다 선수들과 같이 땀 흘리고 운동하는 자체가 좋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게을리하는 것도 없었고, 운동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했고, 열심히 했다. 이 나이까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꼭 게임을 많이 뛰어야 하는 건 아니다. 밖에선 박수 쳐주고 다독거려주고, 코트에서는 또 열심히 하면 된다. 저는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팀 선수이고, 경기를 뛰고 못 뛰고 말고는 차이가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팀 내에서는 물론 리그 전체에서도 최고령 선수였던 그는 2015~2016시즌 도중 두 번째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이 역시 전적으로 후인정의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전력은 트레이드로 19명이던 선수 정원을 초과할 상황에 처했고, 이는 후인정의 은퇴로 귀결됐다. 그리고 2016년 1월 4일 은퇴식을 치른다. 그는 "감독님이 엔트리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셨고, 내가 은퇴하겠다고 했다. 은퇴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에 시원섭섭했다"고 전했다. 은퇴식에 대해선 "조촐한 은퇴식이었다. 시즌 중이기도 했고, 시합 도중이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비록 선수 생활의 끝은 다소 아쉬웠지만, 20년 가까이 현역 선수로 뛸 수 있었던건 분명 특별한 일이다. 그 비결이 뭘까. 후인정은 "자기관리인 것 같다. 볼 운동은 하루 이틀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체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확실히 차이가 난다. 2005년부터 3~4년 동안은 하루도 안 쉬었던 것 같다. 휴가 때도 안 쉬었다"고 역설하면서 "지금 뛰는 선수들은 저보다 더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제는 '지도자' 후인정…"감독으로도 우승하고파"


은퇴 후 한국전력 트레이닝 코치를 거친 후인정은 지난해 모교 경기대의 부름을 받아 코치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코치 계약 만료 후 쉬고 있었는데, 경기대에서 연락이 왔다. 후배들도 가르치고 저도 배구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어 수락했다. 배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기보다 후배들을 지도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경기대 코치로 부임한 지 1년 남짓. 코치직 수행에도 어려움은 있을 터. 후인정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코치가 더 힘들다"고 웃은 뒤 "몸은 편한데 정신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선수 때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됐는데 코치는 선수들을 일일이 가르치고 지적해줘야 하니까 쉽지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예전부터 '코치가 되면 나는 100% 선수들에게 맞춰야겠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개인적으로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연습하는 걸 좋아한다"고 전하면서 "선수들과 편하게 의사소통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지도자 후인정의 꿈에 관해 묻자 그는 "선수 때 우승을 해봤으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로 감독으로 우승을 해보는 게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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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 스포츠서울 DB, 박준범기자 beom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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