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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가 17일 수원지법에 출석해 의견 진술을 한 뒤 인터뷰하고 있다. 수원 | 박경호기자

[수원=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내 아버지도 같다.”

법정에는 나왔지만 심석희가 막상 입을 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용기를 낸 그는 “그동안 피고인과 마주친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기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그래도 진실이 뭔지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진술을 시작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는 17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에 대한 의견 진술을 했다. 이날 판사는 “피고인의 유·무죄가 아니라 양형을 다투는 것인 만큼 심석희의 경우는 의견 진술에 해당한다”며 그의 발언 시간을 허락했다. 검은색 점퍼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착석한 그는 한 동안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판사가 “잘 안들린다”며 다시 진술할 것을 촉구할 정도였다.

심석희는 지난 1월16일 진천선수촌에서 조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조 코치는 이 사건으로 기소된 뒤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돼 현재 수감 중이다. 하지만 심석희는 그의 형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심석희는 “여기서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 메모를 했다”며 판사에게 메모를 보면서 진술해도 되는지 여부를 확인한 뒤 자신이 적은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힘들게 출석하게 됐다”는 심석희는 “피고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했고 4학년 땐 아이스하키 채로 폭행을 해서 손가락 뼈가 골절되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중학생이 된 뒤엔 그 강도가 더 심해졌다. 라커룸으로 끌고 가서 밀폐된 공간에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도 고막이 터지고 손, 손목, 코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선수들도 있었다”고 했다.

심석희는 지난 1월16일 상황도 전했다. 그는 “평창 올림픽을 20일 남겨둔 시점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주먹과 발로 신체 여러 부위, 특히 머리를 집중적으로 폭행당해 뇌진탕 상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심석희는 “평창 올림픽이 꿈이면서 목표였다. 고향(강릉)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에서 레이스(1500m 예선) 중 의식을 잃고 넘어져 꿈을 이루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자신과 가족이 겪는 고통도 설명했다. “내성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공포성 불안 장애, 수면 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심에 심리적으로 너무 억압돼 있어 저항하거나 주변에 알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피고인이 경기나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했고 ‘알리면 너는 끝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말이 막혀 잠시 쉰 심석희는 “그런 식으로 어렸을 때부터 세뇌시키듯 교육받았던 게 가장 컸다. 무엇보다 올림픽을 최대의 목표로 운동하는 국가대표의 삶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다. 다시는 피고인이 이런 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범죄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심석희는 진술하는 동안 자신의 오른쪽에 있던 조 코치를 전혀 보지 않다가 그대로 법정을 빠져나왔다. 선고공판은 내년 1월1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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