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81210_093057628
승부조작 관련 기자회견을 연 이태양(왼쪽)과 문우람. 서장원기자 superpow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왜 골든글러브 시상식 날이었을까? 의구심만 남은 기자회견이었다.

2015년 프로야구계에 휘몰아친 승부조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문우람·이태양이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일부 혐의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자회견의 주제는 ‘전 프로야구 NC구단 투수 이태양 기자회견’으로 이태양이 승부조작을 제안한 혐의를 받고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은 ‘친구’ 문우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직접 나섰다. 승부조작 혐의가 사실로 밝혀져 역시 영구 제명 처리된 이태양은 “저의 잘못으로 인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문우람 선수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며 승부조작에 가담하게 된 경위를 낱낱히 밝혔다.

그런데 이태양이 준비해 온 기자회견문을 읽으며 승부조작의 전말을 밝히는 과정에서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파문이 커졌다. 이태양은 브로커 조 모씨가 자신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한 과정을 설명하며 선수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읊었다. 취재진에 제공된 기자회견문에는 성만 쓰여져 있고 이름은 공란으로 돼 있었지만 이태양이 이름을 넣어 말하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태양은 “브로커 조 모씨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베팅한 선수들을 왜 조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며 검찰 조사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태양의 발언으로 야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언급된 선수 중에는 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포함돼 있어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실명이 거론된 선수의 소속 구단은 즉각 해당 선수에게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했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구단들의 입장은 한결같이 ‘혐의 없음’ ‘사실 무근’이었다. 특히 지목된 C선수와 E선수는 명예 훼손을 당했다며 이태양과 문우람 측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문우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열린 기자회견은 이태양의 실명 공개가 더 화제를 모으면서 폭로전 양상으로 번지고 말았다. 기자회견 후 일체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은 것도 논란이 커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문우람을 구제받게 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순수한 의도도 실명 폭로로 인해 변질됐다. 이날은 프로야구의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실명이 공개돼 구설수에 오른 E선수는 결국 시상식장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프로야구 잔칫상을 뒤엎은 모양새가 됐다. 때문에 의도적으로 택일을 해 파문을 키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문우람의 부친은 “시상식 날인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개연성이 떨어진다. 정말로 문우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면 굳이 ‘브로커’의 검증되지 않은 증언을 토대로 실명까지 공개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또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무수히 양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명을 거론한 이태양과 문우람에 대해 여론의 싸늘한 시선이 꽂히는 이유다.

물론 이태양이 프로야구계에 만연해 있던 어둠의 손길을 송두리째 뽑아내기 위해 파격적인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태양은 잃을 것이 없다. 승부조작 혐의가 인정돼 KBO리그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끊겼다. 그런만큼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이태양 본인도 “죄인인 제가 나서는 게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진실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여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하면서 폭로전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태양과 문우람이 골든글러브를 정면으로 겨냥했다면 기자회견을 뒤에서 지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가설도 성립한다.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조짐이고 2차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KBO와 각 구단도 선수들의 해명만으로 ‘사실무근’을 선언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날 기자회견에 프로야구의 근간을 뒤흔들어 반사이익을 누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면 그 또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이래저래 씁쓸한 뒷맛만 남긴 ‘의혹 투성이’ 기자회견이었다.

superpower@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