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감독 사퇴한 선동열 감독 \'홀가분한 마음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이 13일 전격적으로 사퇴를 선언했다. 14일 오후 KBO회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연 선동열 감독이 짧은 사퇴문을 발표한후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김도훈기자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한국 야구가 ‘국보’를 스스로 폐기했다.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권의 아둔한 아우성에 야구인들은 침묵했고 그 수장격인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구단 사장들은 방관으로 일관했다. 설 곳을 잃은 ‘국보’는 야구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한국 야구대표팀 선동열 감독이 13일 자진사퇴했다. 지난 9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회 3연패 금자탑을 쌓았지만 일부 선수들의 선발 과정을 둘러싼 잡음으로 인해 끝내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선 감독은 이날 KBO를 찾아 정운찬 총재를 만나 사퇴의사를 밝혔다. 당황한 정 총재가 끝까지 만류했지만 마음을 굳힌 선 감독을 돌려 세우지는 못했다. 선 감독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을 국정감사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됐다.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할 것으로 믿는다. 정치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사례는 내가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정치권 일각의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되란 법 없다’는 지적, 늘 명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사퇴하는 것이 야구에 대한 저의 절대적 존경심을 표현함은 물론 새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통해 프리미어12나 도쿄올림픽 준비에도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KS 1차전, 개막합니다 [포토]
정운찬 총재가 4일 잠실에서 열린 KS 1차전에서 시작을 알리고 있다. 배우근 기자 kenny@sportsseoul.com

지난달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까지만 해도 선 감독은 “도쿄 올림픽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가겠다”며 명예회복을 별렀다. 그러나 23일 정 총재가 “전임감독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TV 중계로 선수를 파악하는 감독은 경제현장에 한 번도 가지 않고 경제를 논하는 경제학자 같은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사견을 밝힌 것이 사퇴로 마음을 굳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문광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온라인 포털사이트 댓글을 기반으로 “1200만 야구팬이 선 감독의 사퇴를 바란다. 선수선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쿄 올림픽까지 감독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나 차관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사실상 국가대표 감독 인선에 공개적으로 외압을 행사했다. 여기에 정 총재가 증인으로 출석한 국감에서 손 의원과 미리 말을 짜맞춘 듯 한 태도로 일관하며 선 감독과 전임감독제도 자체를 부정한 모양새가 됐다. 선 감독은 발 붙일 곳이 없어졌고 손 의원이 말하는 ‘1200만 야구팬’을 등에 업은 전현직 정치인이 한국을 대표하던 투수이자 최초의 야구 국가대표 전임감독을 사실상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선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초대 전임감독 체제의 코칭스태프도 와해됐다. 이강철 수석코치는 KT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자연스럽게 대표팀 코치직을 내려놨고 다른 코치들도 선 감독이 뽑아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봐야한다. 대표팀의 한 코치는 “지난 11일 오후에 잠깐 통화했는데 그 때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지인들도 최근까지 자진사퇴를 적극적으로 만류했는데 워낙 크게 내상을 입었다. 감독님 선택이니 존중하는 수밖에 없다”며 탄식했다.

대표팀감독사퇴한선동열감독\'홀가분한마음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이 14일 전격적으로 사퇴를 선언했다. 14일 오후 KBO회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연 선동열 감독이 짧은 사퇴문을 발표하기위해 기자회견장을 들어서고 있다. 김도훈기자dica@sportsseoul.com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을 일군 선수들의 땀도 함께 짓밟혔다. 이번 사태는 향후 대표팀 운영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빗나간 팬덤을 등에 업은 정치 논리가 야구를 통해 국가에 봉사하는 자리로 여겨진 야구 대표팀의 위상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국가대표팀에 굳이 참가할 이유도 사라졌다. 어떤 상황에도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여야 한다는 선 감독의 읍소가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고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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