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윤형기자] 데뷔 이래 줄곧 쉴 틈 없는 행보를 걷고 있는 배우 배두나(39)가 어느덧 20년 차 연기자로 잔뼈 굵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캐릭터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개성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배두나는 지난 8일 첫 방송 된 KBS2 '최고의 이혼'으로 브라운관 컴백을 알렸다.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 '최고의 이혼'은 "결혼은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사랑, 결혼, 가족에 관한 남녀의 생각 차이를 유쾌하고 솔직하게 담은 러브 코미디 드라마다.


지난해 tvN '비밀의 숲'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두나는 8년 만에 복귀하는 지상파 드라마임에도 자신감을 드러내 걱정과 우려를 불식시켰다. 앞서 '최고의 이혼' 제작 발표회를 통해 "내가 하면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했다"며 패기 넘치는 면모를 보였다.


'최고의 이혼'에서 매사 느긋하고 긍정적인 강휘루 캐릭터를 맡은 그는 차태현과의 케미스트리를 과시하면서 현실감 넘치는 결혼 생활을 그려냈고, 설렘 가득한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는 부부의 모습까지 선보이며 새로운 변신을 꾀했다. 실제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 방송 이후 '최고의 이혼'과 '배두나'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하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배두나의 색다른 연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신예 연기자의 출발은 산뜻했다. 1998년 배두나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쿨독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던 그는 KBS2 드라마 '천사의 키스'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에 나섰다. 이듬해 KBS2 '학교-시즌1'에서 반항아적인 이미지로 얼굴을 알린 후 '광끼'의 표루나 역으로 열연해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충무로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000년이었다. 배두나는 일본의 유명 공포 영화 '링 시리즈'의 한국판 리메이크 작품에서 귀신 사다코 역할을 맡아 영화계에 진출했다. 영화감독 봉준호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봉준호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 주연으로 발탁돼 독보적인 연기를 펼쳤고, 같은 해 제21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무엇보다 2000년은 다작의 해였다.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를 담은 영화 '청춘'부터 KBS2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RNA', SBS '자꾸만 보고 싶네', 'TV영화 러브스토리', MBC '엄마야 누나야'까지 장르와 배역을 가리지 않았다. 안방극장에서 보기 드문 공포물 'RNA'에서는 다중인격체 소녀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혼신을 다한 연기는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2001년 영화'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유태희 역을 맡은 배두나는 세심한 감정 연기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요원, 옥지영과 호흡하며 보편적인 20대의 고민을 부드럽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2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제3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그해 영화제를 휩쓸었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연기력 덕분일까. 거장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배두나의 매력적인 얼굴에 매료된 박찬욱 감독은 2002년 개봉한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주연 배우로 그를 캐스팅했다. 무정부주의자 영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배두나는 송강호, 신하균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같은해 영화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코믹한 연기를 펼쳐 다시 한 번 안정적인 연기력을 증명했다.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하는 로맨스 역시 문제 없었다. 2000년 개봉한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 선보인 김남진과의 달콤한 연기는 보는 이의 연애 세포를 자극했고, 영화 역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게 됐다.


국내 드라마와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배두나는 200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첫 해외 진출 작품 '린다린다린다'에서 한국인 유학생 송 역할로 출연, 연기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혔다. 또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 인형'을 통해 주연 배우로 우뚝 섰으며, 한국 배우 최초로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명감독들은 앞다퉈 '배두나 모시기'에 나섰다. 앞서 데뷔작으로 인연을 맺었던 봉준호 감독은 '괴물'로 배두나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양궁 국가대표 남주 역할을 맡은 배두나는 무게감 있는 연기로 극장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괴물'은 그간 흥행성보다는 작품성 위주로 평가받던 그에게 첫 천만 관객을 선물한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도 뜨겁게 반응했다. SF 장르의 혁명가라 불리는 워쇼스키 자매 감독이 배두나에게 관심을 보인 것. 오디션을 통해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캐스팅된 그는 내공 있는 연기력을 발산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이를 인연으로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주피터 어센딩', '센스8'에 연달아 출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드라마 '공부의 신', '비밀의 숲', 영화 '코리아', '도희야', '터널' 등 다양한 작품 속 여러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호평받았다. 깊은 울림과 더불어 흡인력 있는 연기를 과시하며 경찰부터 탁구 선수 역까지 소화해내는 저력을 보였다.


오랜만에 예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배두나는 지난 8월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솔직한 입담으로 귀를 쫑긋하게 했다. 다사다난했던 미국 생활부터 할리우드 진출 비화까지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시청자는 조금은 멀게 느껴졌던 배두나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을 터. 그 친숙함은 '최고의 이혼'에 등장하며 정점을 찍었다.


송강호, 조정석, 이성민과 함께한 '마약왕'도 올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 신비주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힌 배두나가 브라운관과 스크린,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를 응원해 본다.


yoonz@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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